
축제는 마을을 살리는 중요한 열쇠다. 관광객을 끌어당기고 새로운 소득원을 창출해 지역경제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스페인은 축제의 나라다. 한여름 리오하 아로지역엔 그야말로 보랏빛 풍경이 펼쳐진다. 와인이 특산품인 이곳에선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축제인 ‘와인 전투’가 열린다. 이 덕분에 면적 4000㏊(40㎢), 인구가 1만명 조금 넘는 작은 마을을 찾는 사람들은 매년 수만명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와인 전투의 시작을 최소 18세기로 본다. 당시 아로지역에 두 마을이 있었는데, 이들 마을은 비옥한 토지를 두고 오래 전쟁을 펼쳤다. 전쟁 끝에 페르디난드 왕이 즉위했지만 두 마을은 여전히 분위기가 험악했다. 왕은 관계를 회복하려고 두 마을의 수호 성자인 성 베드로의 날과 성 바오로의 날에 산펠리체 산에서 합동 미사를 하도록 명령했다. 이 전통이 피를 흘리는 전쟁을 종식했다는 의미로 피를 닮은 와인을 퍼붓는 축제로 발전하게 됐다.
리오하 관광청에 따르면, 축제날 오전 7시가 되면 마을 주민과 관광객은 산펠리체 산으로 모인다. 참가자는 모두 흰옷을 입는다. 이들은 빌리비오 절벽에 있는 산펠리체 빌리비오 예배당까지 와인을 들고 행진한다. 예배당에 다다르면 옛 전통이 그랬듯 함께 미사를 드린다. 미사 후 신호를 받고 물총이나 물통·분무기에 와인을 채워넣은 다음 격렬한 전쟁을 벌인다. 사람들은 사정없이 상대에게 와인을 뿌리고 들이켠다. 오전 내내 흰옷이 보랏빛이 될 때까지 축제를 즐긴 후 햇빛 아래서 다 같이 옷을 말리고 와인과 어울리는 음식을 나눈다. 술이 너무 아깝지 않느냐고? 걱정 말길. 와인 전투는 아로의 품질 좋은 와인을 알리는 축제인 동시에 잉여 와인을 소모할 좋은 기회다.
지역주민들은 와인 전투가 마을 젊은이들과 어르신의 가교 역할도 한다고 본다. 어르신에겐 추억이, 젊은이들에겐 개성 넘치는 문화로 거듭나 마을을 지키는 축제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라미로 길 산 세르지오 리오하 관광청장은 “아로 지역색을 잃지 않은 결과 마을 주민과 관광객에게 공감을 얻는 지역축제로 거듭났다”며 “무작정 새로운 것을 하기보단 지역주민이 자긍심을 갖는 요소를 관광자원화해서 발전시키는 게 좋다”고 말했다.
아로=박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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