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소멸, 문제는 문화야! - 4부] 문화관광 활성화 스페인-리오하를 가다
농가-와인 생산자 연대 견고
엄격한 품질관리로 명성 얻어
역사품은 문화 온전히 지키니
산업기반 탄탄…지역엔 활기
대 이어 농사짓는 청년들 다수
도시서 배움 마치고 ‘원대복귀’

문화의 힘은 강하다. 무형의 가치는 세대를 거쳐 이어지고 구성원을 하나로 모은다. 문화 자체가 하나의 산업을 이루면서 지역경제를 일으키기도 하고 사람과 자원을 끌어들이기도 한다. 스페인 북부 자치주 리오하가 바로 그런 곳이다. 전형적인 농촌지역이지만 마을마다 활기를 띤다. 바로 100년이 넘는 와인문화가 농업·관광·식음료 등 산업 전반을 견인하고 있어서다. 지방소멸 극복의 비밀을 들여다보고자 리오하의 작은 마을 아로를 찾았다.
◆스페인 와인의 수도 리오하=리오하의 주도 로그로뇨와 아로를 연결하는 국도를 지나면 이색적인 풍광이 연출된다.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광활한 포도나무밭이 펼쳐져 있다. 방문객이라면 여기가 왜 ‘스페인 와인의 수도’라고 불리는지 금세 알아차린다.
리오하 와인산업은 100년이 넘는 전통을 자랑한다. 1860년대 프랑스 전역에 포도나무뿌리 진디병이 퍼지면서 수많은 보르도 와인 상인이 피레네산맥을 넘어 이곳에 안착했다. 보르도와 비슷한 기후에다, 에브로강 주변에 발달한 언덕과 평야는 최상품 포도를 생산하기에 충분했다. 여긴 레드와인용 품종인 그라시아노·그라나차·마수엘로, 화이트와인용 비우라·말바지아·가르나차 나무가 잘 자란다.
이곳 포도농가는 와인 생산자와 긴밀한 관계를 맺는다. 서로 약속한 생산량대로 포도를 사고팔면서 오랜 기간 신뢰를 쌓았다. 젊은이들도 웬만해서는 지역을 떠나지 않는다. 대를 이어 농사를 짓거나, 와인 생산업체에서 일자리를 찾는다. 도시에 나갔다가도 대학에서 와인을 전공해 돌아오는 청년도 꽤 된다.
견고한 와인문화와 산업 덕분인지 농촌 지대임에도 인구감소는 남의 나라 이야기다. 실제 주도를 포함한 리오하 인구는 2000년 초반까지 정체기를 겪다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2000년 27만3800명이었던 인구는 2020년 31만5900명으로 늘었다.

◆고품질 와인에서 문화가 싹트다=“많이 생산하는 건 중요하지 않아요. 오로지 품질에만 집중할 뿐이죠.”
리오하 아로의 와인 생산업체 쿠네 수출팀장 알리시아 길씨는 지역 와인문화 근간을 품질에서 찾았다. 이 회사는 최고급 와인 <임페리얼>을 포함해 <쿠네> <비냐레알> <콘티노> 등의 브랜드를 생산한다.
“포도알 선별에도 굉장히 신경 씁니다. 조금이라도 짓눌리거나 색깔이 흐릿한 것은 과감히 빼버려요. 수확도 모두 수작업으로 이뤄지는데 포도가 으스러지지 않도록 한통에 20㎏이 넘어가지 않게 담습니다.”
농가 역시 양질의 포도를 생산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포도나무를 일정한 간격으로 줄 맞춰 심는 방식을 1950년대부터 도입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이곳 와인은 스페인 정부에서 1991년 원산지 통제규정인 ‘DOCa’ 인증을 받았다. 이 인증을 받으려면 품종, 재배방식, 밭 입지규정을 모두 따라야 하고, 기간도 10년 이상 유지해야 한다.
스페인 정부의 DOCa 인증 관계자는 “현재 해당 인증을 받은 지역은 리오하와 프리오라트 두군데뿐”이라면서 “농가가 양질의 포도를 생산해내도록 품질만 아니라 수확량도 엄격하게 제한한다”고 밝혔다.
◆1000년 문화 융성 꿈꾸는 ‘와인의 공동묘지’=“직원들은 이곳을 ‘와인의 공동묘지’라고 부른답니다. 와이너리가 딱 100년을 맞은 1979년에 지은 와인 창고입니다.”
길씨는 와이너리의 가장 비밀스러운 공간인 지하 와인저장창고를 스페인어로 공동묘지를 뜻하는 ‘세멘테리오’라고 표현했다. 어둡고 습기 많은 저장고에는 1888년산이라 쓰여 있는 것을 포함해 100년 가까이 숙성되고 있는 와인이 셀 수 없이 많이 쌓여 있었다.
“우리가 지켜온 와인과 와인문화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있죠. 판매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보관방식이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맛이 변하는지 연구하는 곳이기도 해요. 세대를 거쳐 앞으로 1000년 이상 이어지길 기대합니다.”
리오하 와이너리는 곳곳에 유서 깊은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 가령 한 와인 창고는 에펠탑을 만든 유명 건축가 구스타프 에펠이 설계했다.
이곳은 시간이 지날수록 단순히 창고 개념을 넘어, 문화의 향연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다양한 공간을 활용해 시음회는 물론 때에 따라 전시회와 결혼식도 열린다.
길씨는 “한국 역시 중요한 와인시장이다”라면서 “앞으로 리오하만의 독특한 와인문화를 살려 더 많은 세계인이 우리 포도주를 즐길 수 있도록 다각적인 마케팅 활동을 펼치겠다”고 강조했다.
아로=이문수 기자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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