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소멸, 문제는 문화야!] 자연에 ‘문화 인프라’ 더하니…청년이 먼저 찾아왔다

입력 : 2022-11-21 00:00 수정 : 2022-11-21 18:48

[지방소멸, 문제는 문화야! - 3부] 문화사업으로 지방 살리는 독일-알텐부르크를 가다

공동체 문화 이끌어가는

사회적 기업 ‘슈타트멘쉬’

문화에 대한 목마름 해소

즐길거리에 온 주민 행복

여행왔던 청년 눌러앉고

지역축제엔 수천명 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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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채로운 문화활동으로 알텐부르크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수잔 사이퍼트씨(왼쪽부터)와 안야 페레씨, 다니엘 로젠가르텐씨. 오른쪽 두 사진은 지난해 열린 지역축제 모습. 출처=슈타트멘쉬 누리집(www.stadtmensch-altenburg.org)

동서로 나뉘었던 독일은 1990년 통일되면서 극심한 인구 변화를 겪었다. 가장 큰 흐름은 상대적으로 경제 상황이 열악했던 동독에서 일어났다. 주민이 일자리를 찾아 서독의 대도시로 이주한 것이다. 인구가 줄어든 지역은 점차 낙후됐고 마을이 붕괴하면서 지방소멸이 빠르게 진행됐다. 악순환의 고리는 지역공동체가 끊어냈다. 이들 활동이 지역문화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었고 비로소 사람이 모이기 시작했다. 소멸위기에서 벗어나 사람들이 주목하는 동네가 된 알텐부르크와 베를린 우파파브리크를 찾아가봤다.


농지가 지역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던 튀링겐주는 통일 이후 약 50만명이 도시를 떠났다. 튀링겐주에 속하는 소도시 알텐부르크는 과거 식료품 공장과 양조장이 지역경제를 이끌었지만, 배후 농업도시가 쇠퇴하면서 덩달아 활력을 잃고 점차 소멸돼갔다. 20여년 사이 5만명을 넘던 주민은 3만명 이하로 줄었다. 특히 젊은 세대 이탈이 심각했다.

2015년부터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사회적 기업 ‘슈타트멘쉬’가 결성되고 구성원들이 다양한 사업을 벌이면서 청년이 하나둘 돌아온 것. 현재 알텐부르크에선 유입인구가 이탈인구보다 많다.
 

지난해 열린 지역축제 모습.

◆심심한 도시에서 역동적인 도시로=슈타트멘쉬를 기획한 코디네이터 안야 페레씨는 알텐부르크 토박이다. 인근 대도시 라이프치히에 있는 대학교에 다닐 때도 1시간씩 급행열차를 타고 통학하며 한번도 고향을 떠난 적이 없다. 친구들이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향하는 모습을 보고 고향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꼈다고 했다.

“도로가 깔리고 주택이 지어지면서 환경이 개선되고 있지만 청년에게 필요한 시설은 없었어요. 또래를 만나 생각을 나누고 여가를 즐기기가 어려웠죠. 살고 싶은 마을이 되려면 청년이 원하는 생활·문화 인프라가 갖춰져야 해요. 비슷한 생각을 지닌 공동체도 필요하고요.”

7∼8년 전만 해도 알텐부르크엔 청년이 갈 만한 카페나 전시관 같은 문화시설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나마 있는 상점은 오후 6시면 문을 닫았다. 혈기 왕성한 20∼30대에게 알텐부르크는 지루하고 심심한 도시였으니 여기보다 또래가 많고 놀거리·즐길거리가 넘치는 도시로 가는 일은 당연했다.

페레씨는 청년을 잡으려면 공동체를 꾸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활동할 만한 공간이 필요하다고 봤다. 서로 끈끈히 결속할수록 발 딛고 사는 지역에 대한 애정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는 “청년의 일상을 역동적이고 다채롭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민 끝에 그는 슈타트멘쉬라는 사회적 기업을 세웠고 지역 청년이 자유롭게 모임을 꾸리고 활동할 수 있도록 도왔다.

‘파브쿠쉐’는 그런 모임 가운데 하나다. 우리말로 옮기면 ‘색채주방’이란 뜻으로, 일종의 미술 동호회다. 10대 청소년부터 백발이 성성한 고령층까지 누구나 모여 그림을 그린다. 대표 수잔 사이퍼트씨는 “시골에 사는 사람도 문화를 누리고 싶은 욕구가 있다”면서 “여긴 그런 갈증을 풀어주는 소중한 곳”이라고 설명했다.

파브쿠쉐 작업실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홀몸어르신은 물론, 알코올 중독자나 부랑자 같은 사회부적응자의 방문도 환영한다. 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며 자활을 돕는다. 사이퍼트씨는 “고령화한 도시에 꼭 필요한 돌봄 기관”이라고 덧붙였다.


◆애향심 높이는 ‘마을 반상회’=잔드로 포글러씨는 교회 목사이자 ‘호프 살롱’ 주인장이다. 주말이면 교회 마당에 음식과 맥주를 차려놓고 주민들을 불러 모아 호프 살롱을 연다.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마을 운영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일종의 반상회다.

그는 “공동체가 약해지면 마을을 떠나기가 쉬워진다”면서 “호프 살롱은 우리 동네만의 중요한 문화”라고 강조했다. 요즘은 행사날이면 가요제가 열리거나 연극이 무대에 오른다. 자리가 마련됐더니 자신만의 끼를 펼치려는 이들이 손 들고 나온다. 즐길 만한 여가생활이 없던 때와 비교하면 큰 변화다.

공동체가 살아나면서 축제도 생겼다. 2018년 5월 슈타트멘쉬가 주최한 행사에 마을주민들이 푸드트럭, 이동형 미용실, 벼룩시장 등을 꾸렸다. 지난해에는 200여명이 참여해 60개 부스를 운영했다.

페레씨는 “무려 2500명이 넘는 관광객이 멀리서 찾아왔다”며 “마을에 모처럼 활력이 넘쳤다”고 말했다.


◆지방은 예술적 영감의 원천=킬리안 비스트씨는 슈타트멘쉬 도움을 받아 알텐부르크에 정착했다. 지원금으로 빈집을 구해 새롭게 고쳐 전시관이자 공유주택인 ‘카지노’를 창업했다. 그곳에서 지난여름 4∼6주간 예술가 체류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잠깐 머물 생각으로 왔다가 공동체가 끈끈하고 문화시설이 잘돼 있는 점에 끌려 눌러앉았습니다. 파브쿠쉐가 활발히 활동한 덕에 주민이 미술에 관심이 많더라고요. 또 소도시만의 여유로움이 제 상상력을 자극했습니다.”

비스트씨가 체류프로그램을 계획한 건 알텐부르크 매력을 도시 청년에게 알리고 싶어서다. 실제 올 상반기 도시 청년 6명이 카지노를 거쳤고 그 가운데 라이프치히 출신 테레사 뮤니치씨는 프로그램이 끝난 후에도 당분간 이곳에서 지낼 생각이다.

쾌적한 자연환경에 젊은 감각의 문화 인프라가 더해지니 청년들이 먼저 찾는 도시가 됐다.

알텐부르크=지유리 기자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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