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소멸, 문제는 문화야!] 청년들이 모여 공동체 형성…문화생태마을로 ‘탈바꿈’
[지방소멸, 문제는 문화야! - 3부] 문화사업으로 지방 살리는 독일-우파파브리크를 가다
베를린 장벽 세워지면서 ‘쇠퇴’
1978년 환경에 주목한 청년들
건물고쳐 체육관·공연장 조성
자연친화적…옥상마다 ‘텃밭’
다양한 공연으로 관광객 북적
댄스 등 여러 수업 진행해 인기
취약층 위해 ‘치유센터’도 운영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 있는 ‘우파파브리크’는 40여년 전만 해도 모두가 살기 꺼리던 동네였다. 1920년대 영화필름을 제작하는 공장이 마을경제를 책임졌는데, 산업이 쇠퇴하면서 공동화가 빠르게 진행된 것이다. 그런데 최근 몇년 사이 이곳은 연간 20만명의 관광객들을 불러들이는 ‘문화생태마을’로 탈바꿈했다. 우파파브리크의 남다른 비결을 들어봤다.
베를린 중앙역에서 버스를 타고 서쪽으로 30분 정도 이동하면 우파파브리크 마을에 도착한다. 오래된 아파트 단지 사이를 한참 걸어 올라가야 입구가 보인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주민 35명이 전부인 1만8500㎡(5500평) 규모의 아담한 마을이 펼쳐진다. 마을은 작아 보여도 유기농 로컬푸드마켓, 게스트하우스, 카페, 대안학교, 공연장 등 없는 게 없다. 500여명이 매일 이곳으로 출근해 각종 문화 프로그램을 기획·운영한다.
지금은 자타 공인 독일의 ‘핫플레이스(지역 명소)’가 된 우파파브리크이지만 과거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이곳은 1920년대 영화필름을 만들고, 카메라와 음향장비를 수리하던 ‘우니베르줌’ 영화사를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이다. 하지만 베를린 장벽이 마을을 가로질러 세워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필름 공장이 문을 닫자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떠나갔고 황폐해진 마을을 지킬 사람은 없었다.
그러던 마을이 다시 시끌벅적해진 것은 공동체가 형성되면서부터다. 1978년 13년 동안 버려졌던 지역을 새롭게 활용하려는 청년들이 모였다. 근처에서 ‘환경축제’가 열려 친환경 먹거리, 재생에너지, 대안 교육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찾아왔다. 이들은 태양광 에너지로 물을 덥혀 수증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샤워시설을 만들었고 유기농 식재료로 요리한 다양한 음식을 나눠 먹었다. 현재 우파파브리크에서 마을 관리와 운영을 맡은 기술부장인 베아나 비아탈라씨 역시 이때부터 이곳에 정착했다. 그는 “이미 건물·도로·운동장 같은 인프라가 있으니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으면 되겠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환경축제에 모인 사람 가운데 50명 정도가 남아 우파파브리크 공동체를 결성했다. 이들은 버려진 건물을 고쳐 집과 공연장·체육관을 지었고 거기에 젊은이들이 좋아할 만한 즐길거리를 선보였다. 어느새부턴가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30여년 만에 ‘누구나 살고 싶어하는 동네’로 거듭나게 됐다.

우파파브리크의 가장 큰 특징은 푸르른 녹음이 함께하는 ‘생태 마을’이라는 점이다. 건물 옥상마다 텃밭이 있다. 여기서 재배한 토마토, 배추, 양배추는 주민들 식탁에 올라간다. 2∼3개 건물에는 태양광 발전기가 설치돼 있다. 비아탈라씨는 “태양광 발전기로 5만㎾ 정도 생산하는데 이는 한달 동안 15가구가 쓸 수 있는 양”이라며 “에너지뿐만 아니라 식재료까지 자급자족할 수 있게 해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자연친화적인 우파파브리크는 학생들에게도 인기 만점이다. 독일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방학 때 필수로 ‘생태 연수’ 기간을 거친다. 생태 연수 기간에는 직접 농사를 지어보고 환경 수업을 들어야 한다. 우파파브리크에서 교육을 담당하는 전문가들이 정부 지원을 받아 해당 프로그램을 기획해 제공한다. 비아탈라씨는 “학생들은 매주 이곳에 와서 옥상에 있는 텃밭을 관리한다”며 “최근엔 ‘생태 달력’이라고 해서 계절별로 각기 다른 꽃이 피는 식물들을 일렬로 심어 관찰하는 프로젝트도 진행했다”고 말했다.
주말에 마을은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500석이 마련된 야외무대에선 다양한 공연이 펼쳐지고 바로 옆에 있는 체육관에선 무술 수업이 진행된다. 2019년엔 우리나라 ‘김덕수 사물놀이패’도 찾아와 공연을 펼쳤다. 그 외에도 다채로운 수업을 열어 아프리카 악기, 밸리 댄스, 플라멩코(스페인 남부지역의 전통춤) 등을 가르쳐준다. 심지어 관광객도 수강할 수 있는데 이 때문에 정기적으로 마을을 찾는 외부인도 많다. 수강료는 또 다른 문화활동을 준비할 기금으로 쓰인다.
앞으로 우파파브리크는 ‘복지 중심지’ 역할을 하며 다른 마을과 상생하는 것에 앞장설 계획이다. 현재 우파파브리크가 운영하는 ‘치유센터’ 20여개 지사는 베를린시 전역에 퍼져 있다. 이곳에선 저렴한 비용으로 홀몸어르신과 어린아이를 보살펴준다.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이 소외되지 않게 하는 게 우파파브리크의 신념이기 때문이다. 비아탈라씨는 “마을 안에서 할 수 있는 문화 활동을 넘어서 베를린, 독일 전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노력한다”며 “이게 바로 우파파브리크가 오래갈 수 있는 비결인 것 같다”고 말했다.
베를린=서지민 기자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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