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소멸, 문제는 문화야!] “무료한 할머니들, 영화 한편으로 삶에 웃음꽃 폈어요”
[지방소멸, 문제는 문화야! - 2부] 살고 싶은 농촌? 문화가 있는 농촌! - 어르신과 영화관 동행
괴산 칠성면 주민자치위원회
문화사각지대 어르신들 위해
마을 영화 보는 날 진행 ‘호평’
희망자는 차로 직접 데려다줘
“태어나서 처음 관람 너무 설레
울고웃고 재미있어 또 오고파”

문화활동 하면 대표적인 것이 ‘영화보기’다. 도시에선 흔한 취미지만 농촌은 많이 다르다. 영화관이 한곳도 없는 지역이 수두룩하다. 막상 지역에 작은 영화관이 생겼더라도 상영시간에 맞춰가기도 어렵다. 지역을 오가는 버스가 하루에 한두대밖에 없는 이유에서다. 영화관에 처음 가보는 김학숙씨(84)의 특별한 하루를 동행했다.
“오늘은 아침부터 눈이 번쩍 떠졌어요, 영화를 보러 가는 날이잖아요.”
충북 괴산군 칠성면에 사는 김학숙씨는 설레는 표정으로 수다를 떨었다. 김씨 말고도 어르신 6명이 칠성면사무소 앞에 하나둘 도착해 시끌벅적해졌다. 이날 어르신들은 3년 전 율원리에 생긴 ‘괴산극장’에서 최신 개봉작 <인생은 아름다워>를 보기로 했다.
김씨는 “평생 영화관 같은 데를 안 가봤으니 딱히 가보고 싶은지도 몰랐다”라며 “그런데 막상 오늘이 되니까 나들이 간단 생각에 마음이 설렌다”라고 말했다.
칠성면 주민자치위원회는 올해부터 매주 한두번씩 어르신을 대동하고 극장을 찾는다. 도정리·사평리·비도리·쌍곡리 등 마을마다 돌아가며 ‘영화 보는 날’을 가진다. 관람을 희망하는 어르신은 이장에게 요청하거나 경로당에 찾아와 신청하면 된다. 어르신 6∼7명이 모이면 관람일이 정해진다. 당일이 되면 오전에 경로당에서 모여 차를 타고 극장으로 이동한 다음 영화를 보고 끝나면 경로당으로 다시 돌아오는 일정이다.
사업을 진행한 박진호 주민자치위원장은 “농촌 어르신들은 영화관에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고 어떤 점이 좋은지도 모르는 분이 많다”며 “직접 모시고 가서 새로운 문화체험을 하도록 도우면 좋겠단 의견이 나와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면사무소에서 괴산극장까진 차로 5분이 걸린다. 가까운 거리인데도 평생 영화 한편 못 본 어르신들에게는 두려운 일이다. 가는 동안 의외로 분위기가 적막했다. 김씨는 슬쩍 “집에서 TV를 보는 거랑 많이 다른가?”라고 운을 뗀다. 그러다 “뭘 알아야 기대를 하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고 부끄러운 듯 손사래를 쳤다.
괴산극장은 상영관 3개 규모의 극장이다. 김씨는 벽에 걸린 다른 영화의 포스터를 보며 “저것도 재미있겠네”라며 신기해한다. 또 함께 온 최정숙씨(86)는 “이렇게 뻔쩍뻔쩍한 곳엔 젊은이들만 오는 줄 알았다”며 “오랜만에 읍내 나오니 좋다”고 분위기를 띄웠다.
영화 시작까지 10분 남짓 남았을 때 대동해준 자치위원들이 분주해졌다. 어르신들은 거동이 편치 않아 미리 입장을 준비해야 한단다. 박 위원장의 부축을 받아 김씨가 3관으로 들어간다. 무사히 각자 자리를 찾아 앉는 데 5분이 걸렸다. 큰 스크린 화면을 바라보는 김씨의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여느 젊은이와 같이 울고 웃으며 영화에 몰입했다.
영화가 끝나자 어르신 7명이 일제히 손뼉을 친다. “잘 봤다” “염정아가 예쁘네” “옛날에 우리 입던 옷을 입고 나와서 반가웠다”고 한마디씩 소감을 말한다. 영화 속에 1980∼1990년대 배경이 나와 친근했다는 김씨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다른 관객들이 모두 상영관 밖으로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천천히 일어난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 아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모두 영화 이야기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영화에서 나온 이야기를 자신도 겪어봤다는 경험담, 배우가 10여년 전이랑 다름없이 예쁘고 멋있다는 말이 봇물 터지듯 나온다.
김씨는 “흥겨운 노랫소리가 옆에서 크게 들리니까 더 신이 나더라”며 “의자도 소파처럼 푹신하고 좋아서 또 오고 싶다”고 말했다.
칠성면 주민자치위원회는 지금까지 어르신 136명을 모시고 영화관을 찾았다. 영화관에 다녀오고 나서 또 관람을 원하는 어르신도 많고, 동네 분위기도 훨씬 활기 넘친다는 것이 박 위원장의 설명. 박 위원장은 “문화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어르신들이 평생 처음 영화를 관람하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사업을 시작하길 잘했단 생각이 든다”며 “앞으로는 영화 관람 후 식사까지 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기획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괴산=서지민 기자, 사진=지영철 프리랜서 기자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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