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소멸, 문제는 문화야! - 2부] 살고 싶은 농촌? 문화가 있는 농촌! - 실패한 인구정책
활성화사업 결말은 ‘용두사미’
지역특성 고려 않고 남발한 탓
인프라보다 ‘마을사람’에 초점
집단의 고유한 정체성 확립해
지역발전 이끌도록 설계해야

11일 오후 3시에 찾은 충북 제천시 송학면 포전리 용두산농산물판매영농조합법인 농산물판매장은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오랫동안 사람 손이 타지 않았는지 주변엔 잡초가 무성했고, 곳곳에 먼지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정문에 붙은 강아지 사진이 담긴 홍보물은 얼마 전까지 이곳에서 농산물이 아닌 개사료를 판매하고 있었다는 걸 말해줬다.
판매장은 2007~2012년 시행한 ‘용두산권역 농촌마을 종합개발사업’에 따라 지어졌다. 국비·도비·시비를 포함해 1억2853만원, 영농조합의 자기부담으로 3204만원이 들어갔다.
같은 마을 기능성발효시설영농조합의 장류 제조시설 역시 그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채 운영이 중단됐다. 예산을 투입하기 전 사업 타당성 등을 제대로 따지지 않았고, 시의 사후관리도 느슨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마을주민은 “사업 초기 마을마다 너도나도 경쟁적으로 예산을 받으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고 사업 승인도 그렇게 까다롭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보시다시피 유동인구도 많지 않은 곳에 들어선 농산물판매장이 애초부터 수익을 내기도 어렵지 않았겠나. 영농조합법인이 불법적으로 시설을 임대까지 해 말이 굉장히 많았다”고 말했다.
정부는 그간 활기를 잃은 농촌을 살리고자 다양한 농촌개발사업을 펼쳐왔다. 1980년대 농공단지 조성, 농어촌 종합개발계획 수립, 1990년대 정주생활권 개발계획, 문화마을 조성사업, 2000년대 농촌마을 종합개발사업, 도농교류 활성화 지원사업, 전원마을 조성사업, 2010년대 일반농산어촌 개발사업, 농촌테마공원 조성 등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시기별로 명칭과 목적을 조금씩 달리하며 다양한 정책을 추진해왔으나 농촌인구 감소는 막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이제부터라도 단순히 마을 시설을 세워주거나, 똑같은 사업 형태를 전국에 무차별적으로 적용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조언한다.
예를 들어 2000년대 초반 행정안전부에서 시행한 ‘정보화마을 조성사업’은 용두사미가 됐다. 정보 사각지대에 인터넷망을 놓고, 마을에 컴퓨터(PC)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주민에게 인터넷 교육을 해주는 것이 사업 주요 내용이다.
해당 사업으로 전국 단위에 정보화마을이 생겨났다. 여기에다 마을별 전자상거래를 할 수 있는 누리집이 개설되기도 했다. 하지만 사업 한계는 뚜렷했다. 대부분 주민이 무상으로 PC가 생긴 것에 만족해했지만, 농산물 온라인 판매 증대와 같은 효과는 미미했다. 마을 환경이나 특색을 고려치 않고 비슷한 방식으로 지원한 탓에 주민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내지도 못했다.
경북의 한 정보화마을 주민은 “우리 마을은 비교적 모범 사례로 꼽혀 누리집 서버를 돌보는 관리자를 한명 두고 있긴 하나 유명무실하다”며 “다른 마을은 더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도 2020년 12월 ‘농촌중심지활성화사업 개편 방향 연구’ 보고서를 발간하며 이런 문제점을 꼬집었다. 이 사업은 정부가 주도하는 일반농산어촌 개발사업의 하나로 교육·문화·복지 부문 등의 생활서비스를 확산하도록 농촌중심지를 육성하는 데 목적이 있다. 하지만 지역별 특성을 세심하게 반영하지 못한다고 비판받아왔다. 보고서는 이를 해결할 방법으로 공공서비스 수요를 세부적으로 파악하는 한편 현장 활동조직과 협력하며 지역 맞춤형 사업을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제는 시설이 아닌 사람에 투자해야 한다는 주문도 귀 기울일 만하다. ‘소득증대·도농교류·인프라구축·마을개발’과 같이 반복된 수사법으로 현혹할 것이 아니라 마을 공동체를 재생해 문화를 융성하면 지속가능한 지방과 농촌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뜻이다.
송성일 한국농어촌공사 농어촌개발이사는 “요즘엔 ‘마을이 아닌 마을 사람에 투자해야 한다’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농촌을 유지·발전시키는 인적자원에 주목하는 전문가가 많아졌다”며 “마을마다 정체성을 확립하고, 문화 발전을 견인할 수 있도록 정부 지원사업 방향을 다시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천=이문수·박준하 기자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 농민신문 & nongmin.com, 무단 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 게시판 관리기준?
- 비방, 욕설, 광고글이나 허위 또는 저속한 내용 등은 사전 통보 없이 삭제되거나 댓글 작성이 금지될 수 있습니다.
- 농민신문
- 페이스북
- 네이버블로그
-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