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5일간 봉화 체험] 식당까지 15㎞, 1만2000원 내야 배달…초등생, 택시 타야 등교 가능

입력 : 2022-11-14 00:00 수정 : 2022-12-07 15:35

[1부] 지방소멸 현주소-경북 봉화에서 5일간 살아보니 

도시의 당연한 문화적 삶…농촌선 그저 TV속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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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한 밤거리…버스가 오긴 오려나 저녁 어스름이 진 한적한 경북 봉화 읍내. 저녁 시간대엔 버스는 물론 택시 잡기도 어렵다.

“왜 도시엔 사람이 넘쳐나고 농촌은 그렇지 않을까?”

이 질문에 문화·경제·사회 인프라가 잘 갖춰진 도시는 편하고 농촌은 불편하다는 뻔한 답이 나올 법하다. 그런데 “그럼 농촌은 얼마나 불편하냐?”는 질문에는 머뭇거리기 쉽다. 고향 토박이 말고는 농촌에서 오랫동안 살아본 이가 생각보다 많지 않아서다. 알아야 면장도 한다는데. 그래서 기자가 인구소멸 위기를 마주한 경북 봉화를 찾아 5박6일간 농촌 살아보기에 나섰다.


산부인과·결혼식장 없는 마을

◆1일차=이른 아침 군청이 기거할 곳으로 마련해준 봉성면 ‘봉화 귀농인의 집’에 당도하자마자 후회가 밀려온다. 줄곧 도시에서만 살아온 터라 5일 동안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할지 몰라 막막함이 엄습한다. 한동안 집 앞마당에서 빙빙 제자리를 도는 잠자리를 멍하니 쳐다보다 정신을 차리고 길을 나서기로 마음먹었다.

자가용을 타고 읍내를 중심으로 10분가량 돌았는데 사뭇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그 짧은 시간 장례식장만 두곳을 지나쳤다. 군청에 전화해 확인해보니 인구 3만명에 불과한데 군내 장례식장은 세곳이나 된다. 반면 산부인과·결혼식장은 ‘0개’다.

봉화는 소멸위험지수가 0.13으로 전국에서 5번째로 낮다. 한국고용정보원이 2021년 5월 기준으로 펴낸 ‘전국 시·군·구 소멸위험지수’ 자료를 살펴보면 0.2 미만은 소멸고위험군으로 분류된다.

다른 인구통계 역시 죄다 적신호다. 2017년과 지난해 통계를 비교한 결과 전체 인구는 2497명(3만3259명→3만762명), 출생아수는 97명(167명→70명), 혼인자수는 21명(88명→67명) 감소했다. 고령화 탓인지 사망자수만 2017년 413명에서 464명으로 급증했다.

장례식장·산부인과·결혼식장 숫자가 봉화군의 현실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한 단면이었을까. 문득 ‘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면서 서울권 특급호텔 예식장의 예약이 내년 하반기까지 꽉 찼다’는 내용의 기사가 떠오른다. 서울과 봉화는 마치 다른 나라가 아닐까 하는 착각마저 들 정도다.


 

문화생활 잔혹한 도전기

◆2~3일차=오늘 마감할 기사를 끝내고 나니 오전 10시. 무료한 마음을 가눌 길 없어 평소 바빠서 보지 못했던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다. 기름값이 고공행진이라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뿔싸! 첫 관문부터 난항이다. 이곳엔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작은 영화관’조차 없다. 동네 주민에게 물어보니 가까운 영화관은 읍내와 가까운 영주 시내에 가야 있단다.

하는 수 없이 터벅터벅 걸어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오랫동안 관리를 안한 듯한 허름한 정류장을 보니 왠지 불길함에 휩싸인다. 정류장 벽면에 버스노선 정보도 없다. 어떤 버스가 몇분 간격으로 올지 전혀 감이 잡히질 않는다. 결국 한시간 넘게 기다리다 지쳐 군청에 전화를 걸었다. 담당자와 통화를 한 후 여기서 버스 타는 것을 포기했다.

봉화에는 버스회사가 없어 영주여객이 군내를 순회한다. 수익성을 이유로 41개 노선별 버스는 지속적으로 감소해 하루에 한대만 다니는 노선이 수두룩하다. 이마저도 연간 16억여원의 군 재정지원금을 투입해 겨우 운영하는 실정이다.

결국 2만2000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택시를 탔고, 읍내까지 나간 후 영주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오후 3시 영주의 한 영화관을 찾았는데 100여석 자리에 관객은 달랑 기자 1명! 영화관까지 오느라 진을 다 빼버렸는지 아니면 주위 적막감 때문인지 잠이 들어 대부분 주요 장면을 놓쳤다.

돌아오는 길도 험난하다. 영주에서 30여분을 기다린 끝에 봉화 읍내행 버스를 탔고 이곳에서 다시 택시를 잡아 봉성면으로 들어가야 했다. 오전 11시에 떠났던 영화관람 여정은 해가 이울 오후 6시가 다 돼서야 끝났다.

다음날 아침 어제 무리를 했는지 밥할 기운도 없다. 스마트폰으로 서울에서 자주 이용하던 음식 배달앱을 켠다. 이곳까지 배달할 수 있는 식당이 딱 한군데 검색된다. 실제 배달이 되는지 걱정돼 식당에 전화를 걸었는데 주인장의 답변에 좌절하고 만다.

“영주에 있는 식당이라 거리가 15㎞가 넘어요. 오래 기다려야 하고 배달료도 1만2000원 내야 하는데…. 그래도 주문하겠소?”
 

#또래 만나기, 하늘의 별따기죠 봉화읍 적덕리에서 딸기농사를 짓는 귀농인 조휘씨. 그는 주로 영주 시내로 나가서 문화생활을 즐긴다. 농촌에 또래 친구가 많아지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친구와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

◆4일차=오랫동안 서울에서 살아온 기자에게 있어 즐길거리가 마땅치 않은 농촌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참으로 무료한 일이다. 앉아서 ‘한세월 두세월’만 할 수 없는 노릇. 여기저기 수소문한 끝에 봉화읍 적덕리에 정착한 젊은 귀농인 조휘씨(33)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2020㎡(610평) 시설하우스에서 딸기농사를 짓는다. 그와 함께 ‘젊은이의 농촌살이’ 이야기를 나누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또래 친구를 만나고 사귀기가 쉽지 않아요. 그나마 지역 4H 조직에 가입해 40대 형님들을 만나면서 시골살이에 재미를 붙이게 됐죠.”

조씨는 대부분 문화생활을 영주에서 한다고 했다. “봉화에는 문화 인프라가 별로 없어요. 여기 젊은 친구들은 영주로 나가 호프집에서 치킨에 맥주 한잔하고 다시 돌아옵니다. 전 이발도 영주 가서 해요. 젊은 취향에 맞춰 머리를 다듬어주는 미용실이 그곳에 많거든요.”

우연히 읍내에서 만난 춘양면 도심3리 이장 황순관씨(62)와도 짧은 시간에 친구가 됐다. 그 역시 젊은 시절 부산에서 교편을 잡다 50대 초반 봉화에 정착한 귀농인이다. 황씨는 농촌문제를 단순히 경제적 관점이 아닌 문화를 포함한 삶의 질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몇년간 태양광 광풍이 불었어요. 일부 마을주민과 외지인이 태양광으로 돈을 벌겠다며 야산을 헐었고 군청은 이걸 허가해줬죠. 자연이 망가진 농촌을 누가 찾겠습니까.”

그는 동네 아이들이 놀 만한 놀이터 하나 없는 점에도 불만을 토로했다. “우리 마을에 아이들과 함께 내려온 귀촌인이 꽤 많거든요. 그런데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다닐 놀이터 하나가 없어요. 군청에 몇번 민원을 제기했는데도 지원 근거가 없다고 난감해하더라고요. 이게 농촌 현실입니다.”

#택시 타야 학교 갈 수 있어요 봉성초등학교에 다니는 학생이 등하교용 택시를 타고 있다.
#초등학교 전교생 16명…폐교되면 어쩌죠 ​​​봉성초 전교생이 현장 견학을 가기 전 운동장에 모여 있는 모습.

택시 타고 등교하는 아이들

◆5일차=아침 일찍 나갈 채비를 했다. 봉성면 남쪽에 있는 봉성초등학교를 방문하기로 해서다. 이곳 학생은 모두 4개반 16명(특수반 제외)이다.

건물이나 운동장은 여느 학교와 비슷하나 학생의 등교방식은 자못 다르다. 시내버스가 다니지 않는 곳은 택시가 학생의 발 역할을 해준다. 대상 학생은 학교 동창회 등의 지원을 받아 무료로 택시를 이용한다.

오전 8시20분 아이들의 등하교를 책임지는 한 기사님과 함께 차를 타고 마을을 돌며 이야기를 나눴다.

“동네 곳곳을 돌며 학생 4명을 태웁니다. 어떤 친구는 도로와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집에 살아서 통학 시간이 상당히 걸려요. 부모님은 돈을 벌러 타지에 있고 조부모만 있는 집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꽤 많은데 택시가 아니면 등교하기도 어렵죠.”

도시와 농촌에만 격차가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농촌 안에서도 읍내와 면 단위간 격차가 존재한다. 학교 관계자의 말이다. “봉성면에 사는 학부모도 웬만해선 아이들을 읍내 학교로 보내려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읍내 학생끼리 관계가 끈끈하게 형성되거든요. 면 단위 초등학교가 생존하기 쉽지 않은 이유죠.”

교육부의 면·벽지 학교 통폐합 권고 기준은 학생수 60명 이하다. 군내 분교를 제외한 초등학교는 총 11곳. 이 가운데 학생수가 60명을 넘는 곳은 읍내에 있는 봉화초등학교(98명) 한곳뿐이다.

봉화=이문수 기자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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