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일터, 건강한 농촌 (1) 농민 건강, 어디까지 와 있나
작업환경 열악…대부분 농부증
근골격계 질환 가장 많이 발병
농약 살포…피부·호흡기 치명
낙상 등 안전사고 발생도 빈번
농촌이 골병들고 있다. 농작업을 하다 다치거나 숨지고, 무리한 육체노동으로 여러 질병을 얻는 일이 다반사다. 이런 농촌의 안전 울타리 역할을 하는 건 ‘농업인안전보험’이다. 안전 사각지대에 놓인 농민 현실과 건강한 농촌 만들기에 앞장서는 농업인안전보험 보상 사례를 7회에 걸쳐 소개한다.
농업은 국제노동기구(ILO)가 규정한 3대 위험 산업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농업분야 재해율은 2019년 기준 0.81%로 전체 산업 평균(0.58%)의 1.5배에 이른다. 몸을 쓰지 않고는 농작물이나 가축을 제대로 키우기 힘들기 때문이다. 농민 건강을 위협하는 농작업 환경과 재해 예방법을 알아본다.
◆무리한 육체노동=농민 대부분은 ‘농부증’이라는 직업병이 있다.
전남 광양에 사는 A씨(64)는 밭에 콩을 심기 위해 허리를 구부린 자세로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하며 2시간 넘게 일했다. 한창 콩심기를 하다 일어나는 순간 허리에서 심한 통증을 느끼고 넘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A씨는 병원에서 ‘척추관협착증’ 진단을 받았다.
농부증은 농민이 갖는 정신적·신체적 질병을 포괄해 일컫는 말이다. 대표적인 증상은 A씨와 같이 근골격계 질환이 꼽힌다. 농촌진흥청의 ‘2020년 농업인 업무상 질병조사’에 따르면 만 19세 이상 농민 176만6219명 가운데 업무상 질병으로 하루 이상 휴업한 농민은 8만8138명이다. 이 가운데 근골격계 질환이 84.6%로 가장 많았다. 특정 신체 부위의 근육·인대·관절·신경 등에 미세한 손상이 누적되면 발생하는 만성적 건강 장해다. 근골격계 질환이 많이 발생하는 부위는 목·어깨·팔꿈치·손목·손가락·허리·다리 등이다. 흔히 ‘쑤시고 결린다’고 호소하는 병이다.
농민에게 근골격계 질환이 많이 발생하는 이유는 농작업 환경이 가장 주요한 원인이다. 장시간 근무, 반복적인 동작이나 불편한 자세, 과도한 힘이나 중량물 취급 등이 농작업 관련 질병을 유발·악화하는 요인이다.
근골격계 질환을 예방하려면 작업 전 충분한 스트레칭과 체조를 하고, 작업 중 짧고 잦은 휴식을 취하는 것이 좋다. 허리를 구부리거나 쪼그리고 앉는 자세는 피하도록 보조도구를 사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반복적인 작업을 해야 한다면 작업대를 사용하고 높이는 팔꿈치 정도나 팔꿈치보다 약간 낮은 위치가 좋다. 바닥의 물건을 들어 올릴 때는 허리를 곧게 편 상태에서 무릎을 굽혀야 한다.
◆농약과 미세먼지=농약은 현대 농업의 숙명이라 불리지만 농민의 호흡기 건강에는 치명적이다. 경기 남양주의 B씨(65)는 고추밭에 농약을 뿌리다 도랑에 발을 헛디뎌 넘어졌다. 농약 수동식 분무기를 메고 있었는데 몸을 앞으로 숙이면서 농약이 새어 나와 두피와 목 피부에 손상을 입었다. 장시간 마스크 없이 작업을 하다보니 농약중독 증상도 동반해 4일 동안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충남 농업안전보건센터의 조사(2019년 기준)에 따르면 1년 동안 농약 살포 때 두통, 피부 가려움이나 의식을 잃는 등 농약중독 증상을 경험한 사람은 조사인원 가운데 경증 11.5%, 중등증 10.7%로 나타났다. 농약중독은 호흡기계 질환뿐 아니라 신경계 질환, 악성종양, 당뇨, 치매 등으로 발전할 수 있다.
미세먼지도 농민의 호흡기 건강을 위협하는 요인 가운데 하나다. 미세먼지는 곡물·짚 등으로 인한 유기분진과 농기계 사용 때 일어나는 배기가스, 축사 내 암모니아·곰팡이 등으로 인해 발생한다. 이러한 농작업 환경에서 장시간 노출되면 만성폐쇄성폐질환·기관지염·유기분진독성증후군 등에 걸릴 수 있다.
따라서 농작업 때 기본적인 보호장비를 잊지 않고 챙기는 것이 건강을 지키는 첫걸음이다. 코와 입 주변을 완전히 밀착할 수 있는 마스크를 착용한다면 호흡기로 농약과 미세먼지가 침투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마스크 종류는 산업용 분진마스크가 적합하다. 특히 농약을 살포할 때는 농약이 새어 나와 피부를 손상시킬 수 있기 때문에 머리·목·어깨 부위를 충분히 덮을 수 있는 방제복과 고글을 착용해야 한다.
◆농기계·농기구 사고=올 8월 공정거래위원회와 한국소비자원의 조사에 따르면 고령자에게 발생하는 안전사고의 10건 가운데 6건은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낙상사고가 가장 많다. 특히 농촌은 경운기·사다리 등 농기계·농기구 때문에 사고가 일어난다. 경기 여주의 C씨(58)는 축사 지붕 보수 작업을 하기 위해 사다리에 올랐다. 작업을 하던 중 사다리가 갑자기 흔들리면서 발을 헛디뎌 땅에 떨어졌고 결국 오른팔이 골절되는 상해를 입었다.
전문가들은 농민의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선 농작업 환경 조성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돌발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작업장 내 바닥의 턱이나 파인 곳은 매끄럽게 정리해둬야 한다. 또 농자재·공구 등도 사용 후 제자리에 정리하는 습관을 갖는 것이 좋다. 농기계는 사용 전후 안전점검을 통해 사고를 막을 수 있다. 농협이나 지방자치단체, 농기계 업체에서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무상점검을 이용하면 전문가의 도움을 손쉽게 받을 수 있다.
이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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