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詩 읽기] ‘실없는 짓’ 하는 사람이 시인

입력 : 2022-08-05 00:00


시란 무엇인가. 40년째 시를 끄적거리고 있지만 누가 저렇게 물어오면 오금이 저려온다. ‘무엇인가’라는 의문사가 들어가면 답을 찾기가 여간 난감해지는 게 아니다. 가령 이런 질문들. 삶이란 무엇인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국가란 무엇인가.

동네 할머니의 질문을 받은 시의 화자도 답변이 궁색하기만 하다. 시인이 뭐냐고 묻는 말에 내놓는 답이 “그냥 실없는 짓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자 할머니가 대뜸 ‘실없는 짓’의 목록을 나열한다.

할머니는 세상을 실속 있는 것(쓸모 있음)과 실속 없는 것(쓸모없음)으로 양분한다. 할머니의 눈이 세상의 눈이다. 할머니 말씀이 맞다. 세상은 실속을 우선한다. 시쳇말로 돈이 되느냐, 안되느냐가 거의 유일한 판단 기준이다.

시인은 이 엄혹한 경제 논리를 벗어나려 한다. 버려진 개와 고양이를 거둬 먹이고 귀한 땅을 묵히기도 하고 밭에다 꽃을 심기도 한다. 이 모두가 시장 경제로부터 한걸음 비켜서는 것이다. 시인은 왜 그러는 것일까. 아마도 지금 여기가 천국이 아니기 때문일 테다.

시인이 보기에, 세상이 천국이 아닌 이유는 우리가 과도하게 실속(쓸모)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인에 대해 이런 정의를 내릴 수 있다. 시인은 천국을 꿈꾸는 사람이라고. 그래서 버려진 생명, 혹사당하는 땅에 남달리 예민한 것이라고. 그래서 다른 사람, 다른 생명과 조화로운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라고.

누군가 “실없는 짓”을 일삼는다면 그에게 시인이란 칭호를 붙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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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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