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핫플] ⑧ 전북 부안 위도
변산반도 서쪽에 위치한 고슴도치섬
허균 소설 ‘홍길동전’ 이상국가 모델
그는 백성·양반 구분없는 세상 꿈꿔
해 질때 가장 높은 곳 망월봉 오르면
쪽빛바다는 온통 황금빛으로 변하고
구불구불한 섬은 그림같은 지상낙원

여름이다. 쪽빛 바다와 파스텔 톤 하늘이 맞닿아 절묘한 물마루를 그리는 섬으로 여행 가기 딱 좋은 계절이다. 고전소설 속 이상향의 배경이 된 섬이 실존한다면 믿으실는지? 전북 부안 변산반도 서쪽에 떨어져 있는 위도는 허균 소설 <홍길동전>에서 이상 국가로 묘사한 율도국이라는 이야기가 전해내려온다. 얼마나 아름다운 곳이기에 조선의 천재 허균마저 반하게 한 걸까. 여름의 소묘가 짙어질 이때 뱃길을 따라, 역사를 거슬러 위도로 향했다.

위도에 가려면 먼저 수려한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변산반도를 가로질러 격포항으로 가야 한다. 여기서 배를 타고 서쪽으로 15㎞가량을 이동하면 위도가 나온다. 위도의 ‘위(蝟)’는 ‘고슴도치’라는 뜻이다. 북동과 남서 방향으로 길게 뻗은 섬 모양이 고슴도치를 쏙 빼닮았다. 지도를 보면 움푹 들어간 진리마을 앞바다는 고슴도치의 입, 위도 위쪽에 있는 식도는 고슴도치의 먹잇감 같다.
<홍길동전>에 나오는 율도국이 정말 위도를 배경 삼았을까. 또 저자는 실제 위도에 가본 적이 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이 머리를 맴돌 때쯤 위도 여객선터미널에 도착했다는 안내방송이 들렸다.
사실 허균이 위도를 방문한 후 율도국을 작품 속에 구현해냈다는 역사 기록은 없다. 다만 여러가지 정황이 이를 충분히 뒷받침한다.
<허균, 최후의 19일>을 쓴 작가 김탁환의 말이다. “변산반도는 조정에 반기를 든 힘 있는 도적 떼의 근거지였어요. 여기에다 허균은 부안 일대와 깊은 인연을 맺게 되거든요. 조선 봉건체제에 반감이 있었던 허균이 이곳에서 새 세상을 꿈꾸지 않았을까요.”
허균이 서른세살 되던 1601년 6월 전라도와 충청도의 세곡을 한양으로 운반하는 해운판관으로 부임한다. 그리고 같은 해 부안의 이름난 기생 매창과 운명적인 만남이 이뤄진다.
최만 부안군 문화관광해설사가 설명을 덧붙인다. “허균이 매창을 만나러 부안에 자주 왔었다면 그 당시에도 명소였을 위도에 한두번쯤은 가봤을 겁니다. 격포항에서 배를 띄우면 인위적인 동력 없이도 조류에 따라 어렵지 않게 위도로 향할 수 있었죠.”
<홍길동전>의 한문 필사본에는 ‘위도왕전’이 나오는데 이는 지금의 위도를 바탕으로 썼을 개연성도 충분하다.
<홍길동전>은 당시 지배층인 사대부 심기를 불편하게 할 만한 반역적 사상이 다수 포함됐다. 양반인 아버지와 첩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서얼 홍길동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집을 떠나 도적의 우두머리가 된다. 그리고 활빈당이라는 조직을 만들어 백성을 괴롭히는 탐관오리에게 벌을 내린다. 백성에게는 도적질한 물건을 나눠준다.
허균은 소설 속에 숨지만은 않았다. 그는 ‘호민론’에서 한계를 드러낸 봉건국가 조선을 강하게 질타한다.
“(요약) 천하에 두려워해야 할 존재는 오직 백성뿐이다. 윗사람에게 부림을 당하는 항민(恒民), 윗사람을 탓하는 원민(怨民), 사회 부조리에 강하게 저항하는 호민(豪民)이 있다. 이 호민이 나라가 약해진 틈을 타 궁예나 견훤처럼 일어나면 원민과 항민이 그 밑에 모여 호미·고무래·창자루를 갖고 무도한 자를 죽일 것이다.”
해가 뉘엿뉘엿 이울 때쯤 섬에서 가장 높은 지대인 망월봉(해발 254m)에 올랐다. 쪽빛 바다는 어느덧 황금빛으로 물들고 구불구불한 리아스식 해안이 한층 선명해지면서 장관을 이룬다. 저 멀리 명징한 괭이갈매기 울음소리가 바람을 타고 귓가에 맴돌고, 만선의 꿈을 실은 고깃배 몇척이 미끄러지듯 물살을 가른다.
풍요롭고 평화로운 이 율도국에서 허균은 마음속에 어떤 세상을 품었을까. 서얼 출신의 벗들이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는 세상, 누이 허난설헌이 여성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마음껏 시문을 뽐낼 세상, 백성과 양반의 구분 없이 서로 어우러져 살아가는 그런 세상이었을까.
시대를 앞서간 천재에게 불행과 불운은 인생의 동반자였다. 파직과 옥고를 여러번 치렀고, 성리학의 나라를 어지럽힌 괴물로 비난받아야 했다. 한때 부강한 조선을 만들어보자며 의기투합했던 광해군은 신분제도를 부정한 허균에게 심문 절차 없이 사지가 찢기는 능지처참을 명했다. 그가 딱 쉰살이 되던 해였다.
이토록 그림 같은 지상낙원에서 세상과 불화한 혁명가의 비극을 마주하다니! 위도는 이율배반의 땅이 아닌가.
부안=이문수 기자, 사진=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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