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유희열의 표절 시비가 사회 이슈로 떠올랐다. 가요계에서 표절 논란은 꾸준히 있었지만 유희열은 방송인으로서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던 터라 팬들의 배신감이 더 컸다.
대개 표절 시비는 우리 음악가가 외국곡을 베낀 경우가 많다. 그런데 반대의 사례도 있다. 가수 이원진이 부른 ‘시작되는 연인들을 위해’가 그것이다.
1971년생인 이원진은 국가대표 유도 선수 출신으로 모친의 권유에 따라 성악으로 전공을 바꿨지만 입시에 실패했다. 미국 유학을 떠났다가 음악에 미련이 남아 국내로 돌아왔고 1994년 채정은 작사, 황영철 작곡의 ‘시작되는 연인들을 위해’를 발표하며 데뷔했다.
곡은 “네가 아침에 눈을 떠 생각나는 사람이 언제나 나였으면 내가 늘 그렇듯이”로 시작되는 도입부가 인상적이다. 1990년 중후반 1020세대의 인기곡이었다. 그런데 노래가 KBS ‘가요톱10’ 상위권에 오르면서 좋은 반응을 얻던 그해 가을 홍콩 가수의 표절 의혹이 제기돼 화제가 됐다. 당시 우리 가요를 외국 가수가 표절했다는 의혹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황영철은 같은 해에 홍콩 가수 장학우와 레진이 함께 부른 ‘In love with you’가 자신이 쓴 노래의 전주·간주·후렴구의 코드 진행, 곡의 구성이 유사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시아 국제 저작권을 담당한 일본 기린저작권협회의 중재를 요청했고 무산된다면 홍콩법원에 제소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사건은 이후 어떻게 결론이 났는지 알려진 바가 없다.
이렇게 묻힌 표절 논란은 4년이 흐른 1999년 미국 팝스타 머라이어 캐리가 발표한 ‘Thank god I found you’가 빌보드 싱글차트 1위를 하면서 다시 소환됐다. 이 곡이 ‘시작되는 연인들을 위해’와 매우 유사하다는 말이 나오면서다. 인터넷에서 여러 주장이 오갔지만 소문만 무성한 채 결국 덮이고 말았다. 머라이어 캐리의 곡은 미국 내에서 다른 노래와도 표절 소송이 진행돼 2006년 법적으로 합의됐다. 일련의 사건은 이 곡을 가장 먼저 발표한 작곡가 황영철에게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당시 우리 가요가 케이팝(K-Pop)이라는 이름으로 현재처럼 상당한 영향력이 있었다면 다르게 전개될 운명일 수도 있다.
세상일은 이렇게 ‘때’를 잘 타고나야 한다. 하지만 그 ‘때’를 언제 알 수 있으랴. 표절 논쟁이 있을 때면 노자가 말한 ‘천망회회 소이불루(天網恢恢 疎以不漏, 하늘의 그물은 성기지만 빠뜨리지 않는다)’가 떠오른다. 그럴싸한 가짜가 판을 치는 요즘 그들은 ‘하늘의 그물’을 피해갈 수 있을까.
박성건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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