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술 답사기] (30) 경기 김포 '문배주양조원'
메조·수수 등 곡식으로 빚는 ‘문배술’ 무형문화재 지정…23·25 등 도수 다양
5대 전수자 이승용씨, 전통의 맥 이어
2000년 김대중 대통령 평양방문 때 김정일 위원장 선물…남북화합 상징
작은 잔에 마셔야 풍부한 곡식향 음미 과거에 단종됐던 50도 술 재출시 계획
좋은 술에선 좋은 향이 난다. 경기 김포 문배주양조원에서 빚는 <문배술>이 그렇다. 메조와 수수 같은 곡식으로만 빚는데도 신기하게 술에서 토종배인 ‘문배’ 향이 난다. 술 이름이 <문배술>인 이유다. 1986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문배술>은 4대인 대한민국식품명인 제7호 이기춘옹(80)에 이어 현재 5대 전수자인 아들 이승용씨(49)가 맡고 있다.
“어려서부터 술 익는 냄새에 익숙했어요. 가업을 잇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죠. 건국대학교 농화학과를 졸업하고 20대부터 일찌감치 술 공부를 했어요. 1997년 전수자로 인정받았죠.”
<문배술>은 원래 북한 술이다. 이 전수자의 가족은 평양에서 ‘평촌양조장’을 설립해 술을 빚다가 한국전쟁이 터진 후 남쪽으로 내려왔다. 전쟁이 끝난 후 3대 고(故) 이경찬씨가 문배주양조원을 설립해 지금까지 전통의 맥이 이어지게 됐다.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건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서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문배술>을 평양으로 가져갔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문배술은 평양 대동강 일대 주암산 물로 만들어야 진짜배기”라고 말하며 남북 화합을 상징하는 술이 됐다.

“쌀이 아닌 메조와 수수로 빚는 이유도 당시 평양 쪽에서 흔하게 자라던 작물이지 않았을까 추측해요. 아버지도 주암산 물로 술을 빚고 싶다는 욕심은 있었지만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숙제로 남았죠.”
<문배술>은 23도·25도·40도로 알코올 도수가 다양하다. 기존엔 도자기병에 담은 40도짜리밖에 없었으나, 2014년 이 전수자가 젊은 소비자층을 공략하기 위해 유리병에 담은 23도·25도 술을 만들었다. <문배술>은 강원도산 메조·수수를 누룩과 발효한 후 증류한 술이다. 문배향은 수수가 발효하면서 나는 향이다. 다만 23도·25도 술은 수수 양을 줄이고 쌀을 더한다. 원가를 절감하고 대중에게 친숙한 쌀 증류주 맛을 내기 위해서다. 주로 23도는 마트에, 25도는 식당에 납품한다.
<문배술>은 증류 후 6개월∼1년 숙성한다. 숙성을 마친 술에선 은은한 배향이 난다. 도수가 높을수록 향이 더 세다. 한모금 마셨을 때는 입안에서 은은한 배향과 소주 특유의 연한 알코올 향이 퍼진다. 목구멍으로 넘길 땐 ‘찌르르’ 한 독한 느낌까지 든다. <문배술>의 진가는 두번째 잔부터 알 수 있다. 첫잔에서 맡았던 알코올 향은 완전히 사라지고 깔끔한 뒷맛만 남는다. 한병을 다 비워도 숙취가 없는 술이다. 술꾼들 사이에선 이런 말도 있단다. “상에 <문배술>이 있으면 (술이 맛있어서) 그날 한명은 꼭 고꾸라진다”고.
이 전수자는 <문배술>의 맛을 제대로 느끼려면 작은 잔으로 마시라고 권한다. 잔술로 먹을 때 풍부한 곡식 향이 제대로 전해진단다. 또 요즘식 칵테일로 만들어 먹어도 좋다. 탄산수 3, <문배술> 1 비율로 섞으면 남부럽지 않은 전통주 칵테일을 만들 수 있다.
“전통주는 반드시 이렇게 먹어야 한다고 정해진 건 없어요. 자기 방식으로 아끼고 사랑하면 그만이죠. 최근엔 전통주바에서 <문배술>로 만든 칵테일도 많이 나오고 있어요. <문배술>은 회에도 어울리지만 뜻밖에 이탈리아 음식과도 궁합이 잘 맞는답니다.”
이 전수자는 앞으로도 문배주양조원에서 꿋꿋하게 술을 만들어갈 예정이다. 올해 안에 50도짜리 <문배술>을 출시할 계획도 갖고 있다. 과거에 출시했다가 찾는 사람이 없어 단종됐는데, 최근 프리미엄 전통주시장이 성장하면서 가능성이 생겼다고 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술을 잘 파는 게 최고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아버지로부터 배우고, 술을 망쳐보기도 하는 등 다양한 경험이 늘면서 잘 파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란 걸 알게 됐죠. 이곳 양조장에는 벌써 20년 넘게 일한 분도 있어요. 혼자 빨리 가기보다는 오래 일한 직원들과 좋은 술을 만들며 함께 가고 싶습니다.”
<문배술> 가격은 40도 기준 400㎖ 2만6000원(호리병), 25도 기준 375㎖ 1만1000원(유리병), 23도 기준 375㎖ 6200원(유리병)이다.
김포=박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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