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대맛 ㉑] 아귀 vs 명태

입력 : 2021-12-10 00:00 수정 : 2021-12-11 00:28

[맛대맛 ㉑] 아귀 vs 명태

 

바다에 겨울이 들면 자연스레 당기는 별미가 있다. 덜덜 떨리는 추운 몸을 덥혀줄 얼큰한 탕이나 밥 한그릇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매콤한 찜, 혹은 갓 잡은 신선한 바닷고기를 푹 쪄낸 수육 등이다. 그중에서도 제철을 맞은 생선 아귀와 명태로 만든 탕과 찜ㆍ수육은 생각만 해도 입안에 침이 고이는 겨울철 별미다. 아귀와 명태를 찾아 겨울바다로 떠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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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귀

아귀

살코기 감칠맛…간은 사르르

찜·탕 등 다양한 음식 지금 제철 경상도선 싱싱한 수육으로 즐겨

아귀간 ‘푸아그라’ 견줄 정도 면역력 강화…눈건강에 도움

 

서양이나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고급 어종으로 치지만, 약 5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재수 없다며 버렸던 바닷고기가 있다. 거대한 입으로 먹이를 통째로 삼키려 드는 탐욕스러운 외양 탓에 지옥에서 굶주림의 형벌을 받는 ‘아귀(餓鬼)’란 이름을 얻은 물고기. 산란기인 봄을 앞둔 겨울철, 아귀가 가장 많이 잡히고 맛이 좋은 제철이 바로 이맘때다.


‘아구찜’이나 ‘아구탕’처럼 아귀는 경상도 사투리인 ‘아구’로 더 많이 불린다. 이는 경상도에서 다양한 아귀 요리가 발달한 데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부산은 다양한 생아귀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으로, 아귀살에 한창 감칠맛이 오른 요즘 딱 먹기 좋은 ‘아귀수육’을 파는 맛집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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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중구 ‘아귀수육’

부산 중구 자갈치시장 초입의 ‘김해식당’에 자리 잡고 아귀수육을 시키자 연한 미나리가 깔린 접시에 푸짐하게 담긴 아귀수육이 나왔다. 부드러운 살코기와 쫄깃쫄깃한 위 등 다양한 부위가 함께 나오는데, 특히 꽃게알 같은 노란빛을 띠는 아귀 간은 유난히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아귀 간을 세계 3대 진미인 ‘푸아그라(거위 간)’에 견줄 정도로 높이 치는데, 입안에 넣으면 씹을 것도 없이 사르르 녹는 듯한 진한 풍미가 일품이다.

맛뿐인가. 영양소도 풍부하다. 우선 아귀 간은 환절기 면역력을 강화하고 눈과 호흡기의 점막을 촉촉하게 해주는 비타민A를 많이 함유하고 있다. 또 아귀는 필수아미노산과 타우린 함량이 많아 피로와 숙취 해소에 도움을 준다. 피부를 구성하는 콜라겐 성분과 피부 염증을 방지하는 비타민B2도 풍부해 피부 건강에도 좋다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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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귀찜

이처럼 맛 좋고 건강한 식재료인 아귀를 매콤한 찜으로 즐기고 싶다면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즉 마산으로 가면 된다. 맵고 짭짤한 양념에 밥 한그릇이 뚝딱 넘어가는 아귀찜은 1960년대 마산에서 탄생한 향토 별미다. 이후 부산, 인천, 전북 군산 등으로 퍼져나가 지역별로 특색 있는 아귀찜 스타일이 생겼다.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생아귀를 쓰지만 원조인 마산에서는 말린 아귀를 쓴다. 보통 11월부터 이듬해 3월 사이에 잡은 아귀를 덕장에서 10∼15일 정도 말리는데, 잘 말린 아귀는 냉동했다가 물에 불린 후 찜에 넣는다.

아귀찜을 최초로 만든 원조집이 어디인지는 의견이 다소 엇갈린다. ‘오동동진짜초가집’은 마산합포구 오동동 아귀찜 거리 내에서도 터줏대감으로 인정받는 집이다. 특히 마산식 아귀찜은 말린 아귀를 쓰는 것 외에도 양념에 재래식 된장을 넣는다는 특징이 있다. 아귀찜 양념에서 구수한 냄새가 나는 것은 이런 비법 덕분이다.

언뜻 보면 아귀살과 콩나물·미나리가 빨간 양념에 버무려진 모양새는 다른 지역과 크게 다르지 않으나, 맛을 보면 마산식 아귀찜만의 매력을 알 수 있다. 아귀찜에 들어간 건아귀의 식감은 코다리보다 쥐포 쪽에 더 가까워 쫀득하게 씹힌다. 이때 쿰쿰한 듯 깊은 맛의 양념이 밥맛을 돋우는 것은 물론이다.

부산·창원=이연경 기자, 사진=김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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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위부터)·북어·코다리

명태

동태살 통통…코다리는 쫀득

북어·강태·망태 등 이름 다양, 동해서 자취 감춰…수입 의존

간·곤이 등 내장 버릴 것 없어 지방 적고 칼슘·비타민 영양 풍부

 

명태는 이름도 많다. 이름이 많다는 것은 사랑받는다는 뜻이다. 상태에 따라 분류해보면 생물은 생태(또는 선태), 얼린 것은 동태, 말린 것은 북어(또는 건태)라 불린다. 또 얼렸다 녹이기를 반복한 황태, 내장과 아가미를 빼고 반건조한 코다리, 소금을 살짝 쳐 꾸덕꾸덕하게 말린 짝태도 있다.

잡는 방법과 지역에 따라서도 이름이 다르다. 그물로 잡은 망태, 낚시로 잡은 조태, 북방 바다에서 잡은 북어, 강원도에서 잡은 강태, 함경도 연안에서 잡힌 큰 크기의 왜태 등 이름만 서른가지가 넘는다.

명태라는 이름의 어원은 조선시대 말기 문신 이유원의 <임하필기>에 등장한다. 명천(明川)이라는 지역의 태(太)씨 성을 쓰는 어부가 잡은 물고기를 도백(각 도의 으뜸 벼슬)에게 바쳤다. 먹어보니 맛은 좋은데 이름이 없다는 소리를 듣고 지역과 어부의 이름을 따 명태(明太)라 지었다는 것이다.

명태는 예전에는 흔한 물고기였으나 지금은 국산 명태를 찾아보기 힘들다. 과거 강원 고성과 속초 등 동해안 지역에서는 한류 어종인 명태가 많이 잡혀 어민들의 주요 소득원이 됐다. 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1976년부터 1981년까지 명태 어획량은 동해 전체 어획량의 44%를 차지했다. 그러나 2008년 이후에는 남획과 기후변화 등으로 명태는 우리 바다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국내에 유통되는 동태는 주로 러시아에서 수입한 것이고, 생태는 일본에서 수입해 쓴다. 속초에서 식당 ‘머슴동태사랑’을 운영하는 김후일 대표는 “몇년 전 명태가 잡히면 1마리에 30만원이 넘었다”며 “명태 이름에 ‘금태’가 추가돼야 할 노릇”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명태는 지느러미 빼고는 버릴 것이 없다. 살뿐 아니라 애(간)와 곤이·이리 등 모든 내장과 껍질까지 못 먹는 것이 없다. 내장은 창난젓, 알은 명란젓이 된다. 껍질은 볶아 먹기도 하고 튀겨 먹기도 한다. 명태는 지방이 적고 열량이 낮아 다이어트에 좋다. 또 칼슘과 인, 비타민A 등 필수아미노산이 풍부해 건강식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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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고성 ‘명태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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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의 대표 요리는 동태탕과 코다리조림(찜)이다. 동태탕은 보통 고춧가루를 푼 매운탕으로 먹지만 고성에서는 맑은 탕으로도 즐긴다. 고성 8미(味) 중 하나인 ‘명태찌개’는 맑은 육수에 콩나물과 무·대파·두부 등을 넣고 끓여 깊은 맛이 난다. 고성군 거진읍에 위치한 ‘성진회관’의 명태찌개는 국물맛이 시원하고 구수하다. 통통한 동태살도 씹는 맛이 일품이다.

‘해오름거진항생선찜’ 식당은 코다리찜으로 유명하다. ‘코다리’라는 이름은 ‘코에 줄을 꿰어 달아맨다’는 뜻의 ‘코달이’에서 왔다고 한다. 생태로 찜을 해도 되지만 반쯤 건조한 상태에서 찌면 씹는 맛이 생살보다 더 쫀득쫀득하다. 코다리찜은 덕장이 많은 고성ㆍ속초ㆍ양양 등에서 많이 즐긴다. 간장과 다진마늘, 고추장 등 갖은 양념을 한 코다리찜은 매콤하면서도 단맛이 난다. 양념장에 밥을 비벼 먹으면 밥도둑이 따로 없다.

고성·속초=글·사진 김도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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