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 기반이 흔들려 완전히 없어져
‘거덜 나다’라는 말은 ‘완전히 없어지거나 결딴나다’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해석만으론 충분치 않다. 숙어사전이라면 이렇게 설명해도 되지만 본뜻을 덮어둔 채 지금 쓰이는 의미만 남겨두면 언젠가는 어원을 잃고 만다.
‘거덜 나다’를 이해하려면 ‘거덜’과 ‘나다’ 두 단어를 알아야 한다.
거덜은 조선시대에 가마나 말을 맡아보는 관청인 사복시(司僕寺)에서 말을 맡아보던 하인을 가리킨다. 거덜이 하는 일은 궁중 행차가 있을 때 말이나 수레가 잘 갈 수 있도록 미리 앞길을 틔우는 것이다. 말을 타고 임금이나 고관이 탄 말과 수레에 앞서 길을 틔우는 거덜은 자연히 우쭐거리며 소리를 높이고 몸을 흔들었다. 이 때문에 사람이 몸을 흔드는 걸 가리켜 ‘거덜 거린다’ 하고, 몸을 몹시 흔드는 말을 ‘거덜마’라고 불렀다. 여기서 ‘거들먹거리다’ ‘거드름 피우다’ 등의 말이 나왔다.
그러면 ‘나다’는 어떤 의미일까. 여기서는 ‘결딴나다’에서처럼 보조동사가 아닌 그냥 동사로 쓰여 거덜이 ‘나타났다’ ‘나왔다’는 뜻이다. 거덜이 나타나 “물렀거라, 섰거라!” 소리치면, 그 다음에는 임금 등을 태운 말이나 수레가 뒤이어 나타나면서 시끌벅적한 저잣거리의 상인이나 행인이 순식간에 엎드려 조용해진다.
이에 빗대어 오늘날에는 ‘살림이나 그 밖에 어떤 일의 기반이 흔들려서 결딴나다’는 뜻으로 쓰인다. 하지만 실제로 말을 끌고 나온다는 의미로는 전혀 쓰이지 않는다.
이재운 (우리말 연구가·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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