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노래 그 사연] 김만준 ‘모모’, “모모는 철부지”…신드롬 일으키다

입력 : 2022-10-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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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가 수록된 김만준의 음반.

가요계에는 소설을 소재로 한 히트곡이 있는데 바로 김만준의 ‘모모’다.

노래를 작곡한 박철홍은 고등학교 3학년이던 어느 날 교통사고로 다리를 못 쓰게 됐다. 자괴감에 빠진 그는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던 중 프랑스 소설 <자기 앞의 생>을 읽고 감명을 받아 멜로디를 만들었다. 몇년 후 광주 전일방송 주최 대학가요제 출전을 준비하던 조선대학교 학생 김만준에게 곡을 줬다. 김만준은 가사를 고민하다가 책 <자기 앞의 생>의 후면에 인쇄된 문구를 보았다. “모모는 철부지, 모모는 무지개, 모모는 생을 쫓아가는 시곗바늘이다” “날아가는 니스의 새들이 꿈꾸는 모모는 환상가 그런데 왜 모모 앞에 있는 생은 행복한가”라고 쓰여 있었다.

김만준은 문구를 개사해 가요제에 출전했고 대상을 받았다. 그리고 얼마 후 ‘모모’는 전국적으로 대성공했다. 노래 속 ‘모모’는 철부지·무지개·시곗바늘·방랑자로 표현되는데 격동의 역사 속에서 나아갈 길을 고뇌하는 한국인에게 질풍노도적인 모호한 표현이 공감을 받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모모’는 신드롬으로 이어졌다. 1979년엔 연극 <모모> <모모와 마담 모자르>가 막을 올렸다. 그해 영화계에선 전영록·이미숙이 주연한 영화 <모모는 철부지>가 개봉했다.

이제 책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가보자. 작가 에밀 아자르는 당시 행적이 알려지지 않은 무명작가로서 <자기 앞의 생>으로 1975년 프랑스의 권위 있는 문학상 공쿠르상을 수상한다. 소설 내용은 어느 홍등가에 버려진 아이들이 한집에서 보살핌을 받으며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참고로 ‘모모’는 주인공 모하메드의 애칭이며 가사 속 ‘니스’는 프랑스 휴양지이다.

이후 시간이 흘러 ‘모모’ 신드롬이 점차 사그라들던 1980년 어느 날 프랑스를 들썩인 사건이 벌어졌다. 소설가 로맹 가리 이야기다. 소설가인 그는 1956년 <하늘의 뿌리>로 공쿠르상을 받았다. 이후 외교관이 돼 프랑스 총영사를 지냈고 미국 할리우드에 진출해 영화감독으로 데뷔하는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그런 그가 1980년 자신이 ‘에밀 아자르’라고 밝혔다. 공쿠르상은 한 사람이 2회 이상 받을 수 없으므로 가상의 인물로 응모해 상을 받은 것이다. 자신의 실력을 시험해보고 싶었을까?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저서 <문학이란 무엇인가>에서 이렇게 말했다. “작가란 세상을 놀라게 할 생각으로 펜을 들어야 한다.” 로맹 가리는 <자기 앞의 생>을 살며 여러차례 세상 사람을 놀라게 했다. 한국인에겐 김만준의 노래 ‘모모’가 남았다.

박성건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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