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수 전인권이 신곡 ‘물고기’를 발표했다. 검은 선글라스를 쓰고 사자후 같은 곡조를 토해내는 그의 올해 나이는 67세. 일흔을 앞두고서도 계속해서 노래를 발표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그의 1988년 히트곡 ‘돌고, 돌고, 돌고’를 실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돌고, 돌고, 돌고’는 전인권이 밴드 들국화 활동을 접고 솔로로 독립해 발표한 첫 음반의 수록곡이었다. 가사는 해와 달이 뜨고 지고 사람들이 만났다가 헤어지는 등 우리의 삶은 돌고 도는 것이라는 불교의 윤회 철학을 다룬다.
이 곡은 전인권이 대마초 사건으로 옥살이한 경험에 기반을 두고 있다. 당시 감방에서 절도죄 수형자와 함께 지냈는데 그에게 “내 집을 털면 너를 최고의 도둑으로 인정하겠다”며 주소를 줬다. 출소해 집에 돌아와보니 그가 정말로 집을 털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뭣도 모르는 다섯살 딸이 부른 동요 ‘둥글게 둥글게’가 영감을 더해 곡이 완성됐다. 노랫말 가운데 “서로 다르게 같은 시간 속에”는 같은 시대에 살고 있지만 서로 다른 삶을 사는 도둑과 자신을 비유한 것이라고 한다.
가수는 노래를 따라간다고 전인권은 돌고 도는 불교의 인과응보와 같은 삶을 살았다. 1987년 노태우 대통령이 대통령 직선제를 발표하며 민주주의가 고개를 들던 시절 그는 저항과 희망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대마초 사건으로 수차례 구속되면서 자취를 감췄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그 때문에 다수 팬이 그를 떠났고 방송가에서 그의 노래를 쉽게 들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쉬지 않고 음반을 발표했다.
그러던 2015년 흥미로운 일이 벌어졌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가수 이적이 전인권의 노래 ‘걱정 말아요 그대’를 리메이크해 삽입했는데 노래가 인기를 얻더니 이듬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 국민의 희망송으로 떠오른 것이다. 그러나 이내 암초도 나타났다. 독일 그룹 블랙푀스(Black Foss)의 곡과 표절문제가 제기됐다. 이 일로 노래가 가진 아우라는 퇴색되고 말았다.
불교의 교리 가운데 연기(緣起)라는 것이 있다. 모든 것은 홀로 존재할 수 없고 원인과 결과가 있다는 뜻이다. 선업을 쌓으면 선한 결과, 악업을 쌓으면 악한 결과가 뒤따르며 되풀이된다. 이런 말을 요즘 젊은이에게 하면 코웃음을 칠지 모르겠다. 부모 찬스, 각종 반칙으로 기회를 잃어버린 청춘에게 돌고 도는 세상에서 덕을 쌓으며 살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멀리 보면 결국 ‘천의어인무후박(天意於人無厚薄)’이다. ‘하늘은 인간에게 두텁고 얇은 차별이 없다’는 것이 수천년 살아온 선조가 말해준 진리다.
박성건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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