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석이 가까워 오면 평소 보지 못한 가족을 만날 마음에 설렌다. 하지만 몇몇 미혼 남녀는 마음이 불편하다. 이말 저말 나누다 보면 “언제 결혼할 거냐”는 말까지 나오기 때문이다. 요즘엔 ‘꼰대’라는 말로 그런 질문을 막을 수 있지만 과거에는 어른이라면 당연히 물어도 되는 말이었다. ‘얘야! 시집가거라’라는 노래 제목도 있었으니 말이다.
이 곡은 가수 정애리가 1977년 발표한 노래다. 지금은 성차별적이며 가부장적인 의미로 해석되지만 1970년대 후반 한국사회의 단면을 들여다볼 수 있어 흥미롭다. 가사는 19살 순이가 동네 사람으로부터 시집가라는 소리를 들으며 시작하는데 곳곳에 있는 재미난 점이 눈에 띈다. 일단 순이는 “상냥하고 복스러운” 성격과 외모를 지녔다. 당시 여성의 아름다움의 기준이 순종적이면서 달갈형의 통통한 얼굴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시집가라는 부모 말씀 좋으면서 싫은 척 화를 낸다”는 노랫말에선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사회의 미덕이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1절 끝부분에 나오는 “싱글 생글 미소 질 땐 부잣집 맏며느리감”은 가부장적 집안의 며느리가 되는 것이 여자의 일생이라는 것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혼기가 차서 잔소리를 듣게 되는 나이가 겨우 19살이다.
현재와 비교하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이 겨우 30∼40년 전이라는 것도 상당히 놀랍다. 남성이 집안에서 절대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여성은 오로지 집안일만 강요받던 때가 불과 수십년 전이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는 1980년대로 막을 내리기 시작했다. 1990년대 초반 기성세대 앞에서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는 것이 당연했던 ‘X세대’가 등장해서다.
정애리는 서구적인 외모를 가져 주목받았는데 전통적인 민요풍의 노래를 불렀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민중가요를 주로 만든 작곡가 백창우에게 노래를 받아 앨범을 취입한 일도 있다. 백창우는 평소 밤무대 가수를 무시했지만 정애리의 노래를 듣고 편견을 없앴다고 회고했다. 정애리는 결혼 후 활동을 중단했다가 이후 KBS 가요무대 등에서 종종 볼 수 있었으나 2014년 한강 둔치에서 실족사했다.
가수의 운명을 연구하다 보면 때와 인연이 닿지 않아 성공을 거두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하지만 어쩌랴. 공자가 논어에서 말한 ‘서자여사부 불사주야(逝者如斯夫 不舍晝夜·가는 것이 물과 같아 밤낮으로 멈추지 않는구나)’처럼 지나가 버린 것을. 남겨진 그녀의 노래가 많은 사람에게 위로가 되어주길 바랄 뿐이다.
박성건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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