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다’. 우리가 거의 매일 주고받는 일상 언어다. 한해가 간다. 겨울이 간다. 하루가 간다. 이뿐이랴, 사랑도 가고 사람도 간다. 인생도, 시대도 간다.
가야 온다. 낡은 것은 가고 새것이 온다. 하지만 우리는 이 자명한 사실을 자주 잊는다. 속도와 효율을 우선하는 도시적 삶이 낮과 밤의 경계를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24시간 사회’라는 용어가 낯설지 않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사정이 더 나빠졌다. 일터와 집, 노동과 휴식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삶의 리듬이 깨졌다. 사회적으로 거리를 두자 심리적 괴리가 일어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외로움·무력감·우울감이 신종 바이러스처럼 번지고 있다.
아침과 저녁이 사라지고 봄가을이 순식간에 지나가지만 연말연시는 아직 엄연하다. 정성스레 주소를 쓰고 우표를 붙이던 시절은 지나갔지만 이맘때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불이 난다. 한두줄 덕담에 희망찬 이미지를 덧붙여 여기저기 보내고 또 그만큼 받기도 한다.
스마트폰을 열어놓고 연하장 보낼 사람을 가려낼 시간이다. 내가 그렇듯이 누군가 또한 내 연락처를 놓고 고개를 갸웃할지도 모른다. 나는 이 세시 풍속을 ‘사회적 연말정산’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번 연말에는 송구영신 메시지 보낼 사람이 더 생기셨기를! 그리고 누군가에게 잊히지 않으셨기를!
‘인간은 없다. 인간관계가 있을 뿐이다.’ 심리학자 아들러가 남긴 말이다. 한해를 돌아보며 ‘본래의 나’가 되거나 철이 들어 언행을 조심하게 되는 일, 이 모두 ‘나’를 둘러싼 관계를 성찰해야만 가능하다. 관계를 제대로 읽지 못하면 ‘말소리’와 ‘발걸음’은 절대 달라지지 않는다.
이문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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