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詩 읽기] 5분만이라도 하늘에서 내려온다면

입력 : 2022-1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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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아들이 부쩍 성숙하는 나이가 있다. 아버지가 자기를 낳은 나이가 되었을 때다. 딸도 마찬가지일 테다. 엄마가 자기를 낳은 나이가 되면 딸은 새삼 삶의 안팎을 둘러본다.

부모가 자기를 낳은 나이가 됐는데도 무덤덤하다면 무슨 문제가 있어도 크게 있다고 봐야 한다. 나는 50대 초반에도 철부지란 소리를 들었는데 그때마다 ‘쉰둥이’여서 그렇다고 둘러대곤 했다.

오랜만에 엄마를 주제로 시 한편을 썼다. 경기문화재단이 최근 엄마를 주제로 한 사화집을 펴냈는데 거기에 참여한 것이다. 돌아보니 내 시에 엄마의 자리는 거의 없었다. 돌아가신 뒤에도 아들의 불효는 막심했다.

뒤늦게 엄마를 시의 나라로 초대하려니 막막했다. 며칠 끙끙대다 생각해낸 것이 엄마의 밥상이었다. 열여섯에 시집와서 돌아가실 때까지 67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은 그 밥상. 얼추 계산해보니 7만3300번이 넘는다.

지난겨울, 밀린 원고를 쓰기 위해 혼자 강화 섬에 들어가 한달을 살았다. 그때 알았다. 숙소 바로 옆에 편의점이 있었는데 글쎄, 거기에 엄마가 계셨다. 혼자 사는 이에게 편의점은 엄마의 부엌이었다. 간편식을 들고나올 때마다 하늘나라 엄마를 생각했다.

이야기를 바꿔보자. 시는 읽는 이의 처지에 따라 다르게 읽힌다. 사회 분위기도 반영되기 마련이다. 10·29 이태원 참사를 애달파하는 독자라면 정채봉 시의 화자를 ‘엄마’로 바꿔 읽을 것이다. 가슴에 묻은 자녀가 잠깐 하늘에서 내려온다면 엄마는 무슨 말을 할까. 그 엄마가 땅을 치며 통곡할 ‘억울했던 그 일’은 무엇일까.

연말이 오고 있는데, 누군가의 10월은 가지 않고 있다.

이문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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