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詩 읽기] 달력 한장을 남겨두고

입력 : 2022-11-25 00:00

12월을 앞두고 누구나 마음이란 건 다 그렇지 않을까 한다. 뭔지 모르게 저리고 뭔지 모르게 살짝 억울하기까지 하다.

손준호 시인처럼 우리네 좁은 가슴에도 빈 벌판만 한가득.

이 시의 첫 연은 김수환 추기경의 말씀이라고 한다. 머리와 가슴의 거리에 대해 생각한다. 사랑의 진실을 깨치는 데 70 평생이 걸렸다면 머리와 가슴의 거리가 세상에 제일 먼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먼 거리에 떨어져 있는 그 두개를 우리는 이고 짊어지고 살지만 어떻게 보면 그 둘을 잘 운용하고 사는 것 같지도 않다.

얼마 전 하고 싶은 게 많은 한 사내를 만났다. 그림도 그려야 하고, 글도 써야 하고, 악기도 해야 한다. 정신이 없었다. 중년이 시작되는 나이에 소년처럼 살고 있는 것을 넘어 스스로의 광기를 어쩌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그를 보는 일은 ‘불난 집’을 구경하는 것처럼 위태로웠다.

‘할 수 있다면 그때 하도록 하자’ 하고 늘 나 자신에게 타일러왔는데, 나는 자신의 뜨거움을 어쩌지 못하는 사람 앞에 팔짱이나 끼고 앉아 있었다. 뭐든 저지를 수 있다면 그 자체가 청춘이라는 ‘나가오카 겐메이’의 말이 떠올랐다.

12월 하순이 되면 눈 쌓인 한라산에 올라가겠다는 사람들을 알고 있다. 그것이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럿이라는 점이 나를 달아오르게 한다. 달랑 한장 남긴 달력 앞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동동거리고 있느니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12월 한달을 앓게 될 누구나의 마음은 다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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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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