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詩 읽기] ‘톱질’을 멈춰야 한다

입력 : 2022-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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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인증샷’을 찍어 보냈다. 지구가 급격하게 뜨거워지는 사태를 막기 위한 시민들의 긴급 행동에 나도 따라나서겠다는 뜻을 전했다.

24일(토)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시민들이 ‘기후 재난, 이대로 살 수 없다’며 즉각적이고도 전면적인 전환을 요구하는 행진을 벌인다. 이날 들고 나갈 피켓에다 뭐라고 쓸까 궁리하다가 브레히트의 짧은 시가 떠올랐다.

19세기말 독일에서 태어난 브레히트는 시와 소설을 쓰다가 연극 쪽으로 분야를 넓혔는데 그가 아니었다면 현대 연극은 ‘카타르시스(정화)의 압박’에서 많이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20세기 서구 연극의 파격이었다.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그의 연극론은 소격(소외) 효과로 수렴된다. 브레히트는 감정이입이나 카타르시스를 거부했다. 전통 연극과 달리 배우와 관객 사이에 ‘거리’를 둠으로써 관객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에 의해, 수동적이던 관객이 능동적 관객, 즉 정치적 주체로 올라섰다.

왼쪽에 실린 시 ‘톱질하는 사람들’은 그의 희곡론이 그대로 반영된 우화다. 그의 무대가 그렇듯이 이 시도 독자에게 열려 있다. 읽는 우리가 결론을 내야 한다. 나는 이렇게 읽었다. 시에서 나무란 곧 ‘어머니 지구’이며, 계속되는 톱질은 생산력 제일주의의 질주와 무지막지한 소비행위라고.

그런데도 톱질을 멈추지 않는다면, 인간과 뭇 생명이 죽어나가는 걸 목격하면서도 우리가 산업(탄소) 문명의 폭주를 막지 못한다면 우리는 공멸하고 말 것이다. 그렇다고 피켓에다 ‘톱질을 멈추자’라고 쓰면 이해할 사람이 거의 없을 테고. ‘촌철활인(寸鐵活人)’하는 구호는 무엇일까, 고민이다.
 

이문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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