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詩 읽기] 어느 하나라도 부족하면

입력 : 2022-09-02 00:00


쌀 미(米) 자를 풀면 숫자가 나온다. 88(八十八). 쌀 한톨을 거두려면 농부의 손길이 여든여덟번이나 가야 한다는 의미다. 쌀이 귀하던 어린 시절, 아버지한테서 귀가 따갑도록 들은 얘기다.

농부의 구슬땀뿐이랴. 벼 한알이 익으려면 온 우주가 필요하다. 햇빛·바람·흙·물·미생물·곤충…. 천지자연의 총체적인 도움에 견주면 인간의 역할은 미미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자연이 동참해주지 않으면 식물의 생장은 불가능하다. 식물에 문제가 생기면 동물도 즉각 탈이 난다. 모든 생명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천지자연의 그물망(네트워크)이 끊어지고 있다. 인류 문명이 자연의 순환에 너무 깊이 개입한 탓이다. 기후 재앙과 함께 6차 대멸종이 도래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이 여기에 있다.

19세기 중반 독일에 유스투스 폰 리비히란 화학자가 있었다. 식물 생장에 필요한 3대 요소(질소·인산·칼륨)를 발견한 학자다. 그의 선구적 연구는 곧바로 인공 비료 개발로 이어졌다.

리비히는 다른 영양소가 아무리 충분해도 어느 한가지가 부족하면 식물은 성장하지 못한다고 못 박았다. 이것이 ‘리비히의 최소량의 원칙’이다. 이처럼 조화와 균형을 강조한 그가 땅을 죽이는 현대 화학(산업) 농법을 목도한다면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하다.

나는 최소량의 원칙을 개인은 물론 사회와 국가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삶은 무엇이 부족한가. 우리의 농사, 우리의 정치와 경제, 이 시대와 문명은 대체 무엇의 최소량을 채워 넣어야 ‘정상화’를 이뤄낼 것인가.

올가을에도 어김없이 익어가는 대추를 곰곰 살펴봐야겠다. 거기에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

01010101401.20220902.900057187.05.jpg

이문재 (시인)

ⓒ 농민신문 & nongmi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게시판 관리기준?
게시판 관리기준?
비방, 욕설, 광고글이나 허위 또는 저속한 내용 등은 사전 통보 없이 삭제되거나 댓글 작성이 금지될 수 있습니다.
농민신문 및 소셜계정으로 댓글을 작성하세요.
0 /200자 등록하기

기획·연재

많이 본 기사

최신기사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