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이 마무리됐다. 후보들이 내놓은 농업 관련 선거공약을 보면 농가인구 감소와 고령화에 대응한 청년농 육성이 포함된 점은 다행이었다. 하지만 직불금이나 농업예산 증액, 여성용 농기계 보급 확대 등 5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공약이 많아 아쉬웠다. 우리나라 농업구조가 급변하고 있고 산업의 디지털 전환과 기후변화가 급속하게 이뤄지는 시점에 농업부문의 정책 어젠다는 너무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세계적으로는 미국과 중국간 디커플링(탈동조화)이 심화하고 우크라이나 전쟁 같은 지정학적 위기가 동시에 발생해 글로벌 공급망이 불안해졌다. 비료 원료, 사료용 곡물 등 원자재를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는 신속하게 대처하기 어렵다. 코로나19 등 감염병으로 외국인 노동력 공급도 원활하지 않다. 외국인 노동력 의존도가 높은 우리 농업 현실에서 이런 문제를 단기간에 해결하기는 쉽지 않다.
최근 국내 농업 현장에서 일어나는 농업구조 변화도 기존 경험과 정책으로는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 해방 이후 농지개혁을 통해 소수 지주에게 집중된 농지를 다수 농가에 저가로 분배했지만, 현재는 경작할 농가가 많이 줄어 다수가 갖고 있는 농지를 소수 농민들이 경작하는 구조다. 우루과이라운드(UR) 이후 농지은행을 통해 농업경영 규모화를 위한 농지 규모화 사업을 진행했지만 그 수혜자들도 이제 자식들에게 농지를 상속해야 하는 나이가 됐다. 상속 과정에서 다시 농지가 분할되는 문제가 발생하고, 정작 농업에 새롭게 종사하고자 하는 청년농들은 조각난 농지를 매입하거나 임차하는 데 애로를 겪는다.
지식의 반감기라는 용어가 있다. 어느 분야 지식의 절반이 쓸모없는 것으로 바뀌는 데 걸리는 시간을 말한다. 즉 진실로 여겨지던 지식에 허점·오류가 발견되거나 새로운 지식이 등장해 기존 지식의 유용성이 절반으로 감소하는 기간이다.
미국 하버드대학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물리학의 반감기는 13년, 경제학은 9.4년, 수학은 9.2년, 심리학은 7.1년이다. 과학기술 발달로 현재 대부분의 분야에서 지식의 반감기가 급격히 짧아지는 추세다. 이스라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오늘날 지식량은 맹렬한 속도로 증가하고, 새로 발견한 지식은 더 빠른 경제적·사회적 변화를 일으킨다고 말한다.
이렇게 빠른 변화의 시기에는 과거 경험과 지식에서 해방돼 새로운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직불금 증대, 농업예산 증액과 같은 정책 어젠다를 반복하기보다는 바뀐 환경과 정책 여건을 고려해 원점에서 문제를 다시 생각하고 새로운 미래를 그려봐야 한다.
예를 들어 농지 분할 문제는 농업에 종사하는 자녀에게만 농지 상속을 제한하거나 농지은행 농지신탁을 통해 농지를 실제로 경작할 사람에게 장기 임대해주는 방식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여성용 소형 농기계 개발도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산지나 경사지에서 주로 노동력에 의존하던 밭농사가 바뀌고 있다. 이제는 평지에 시설하우스나 스마트팜을 설치하고 농기계를 활용해 생산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여성이 스마트 농기계를 잘 활용할 수 있도록 교육을 강화하고 대형 농기계도 여성이 운전하기 편리하도록 설계를 변경하는 방안을 모색할 때다.
한국농수산대학교 첨단 농기계 실습장에는 여학생들이 더욱 열정적으로 농기계 자격증 과정에 도전한다. 바람직한 방향이어서 보고 있으면 흐뭇하다.
조재호 (한국농수산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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