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농정공약들 공염불로 끝나
농업문제 공감…소득기반 확립을
우리 국민의 고심 끝에 0.7% 간발의 차이로 향후 5년을 책임질 정권이 바뀌게 됐다. 여야 후보의 국정 운영 철학과 정책 기조가 상당한 차이를 보여 대한민국의 경제 지형이 크게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차기 정부하에서 농촌과 농민의 형편이 나아질지는 의문이다. 이번 대통령 선거 기간에도 여지없이 장밋빛 공약들이 제시됐지만 이를 믿는 농민들은 별로 없어 보인다. 대부분 헛공약이었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NBS한국농업방송과 농민단체가 주관한 대선 농정공약 발표회에 참여한 후보들이 당선 후 공약을 지킨다는 서명식을 한 우습고도 슬픈 사실이 공약의 무게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실제로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은 공약은 공약일 뿐 실천 가능한 것을 선택해 추진하겠다는 방어막을 미리 치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은 우리 농업에 있어 최악의 시기였다. 무성의하고 초라했던 대통령 후보 공약처럼 농업에 대한 애정이나 관심은 찾아볼 수 없었다. 농업예산은 축소되고, 6차산업화와 창조농업 등 거창한 구호는 속 빈 강정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뒤이어 등장한 문재인정부 농정도 별로 달라진 건 없었다. 농업은 여전히 무시되고 소외됐다. 농업예산은 계속 쪼그라들고, 농업 현실은 더욱 피폐해졌다. ‘농민이 행복한 국민의 농업’을 약속했던 문재인정부 농정은 아마추어 참모진과 폐쇄적 관료제의 상흔만 남긴 채 마무리될 예정이다.
과거 정부들의 장밋빛 공약 속에서도 우리 농업은 하향 일로를 걸어왔다. 농정의 결과는 소득으로 나타난다. 농민들은 아무리 열심히 농사지어도 월평균 100만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농업소득에 좌절하고 있다. 이는 최저임금을 월소득으로 환산한 191만원의 절반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저조한 농업소득은 정부 보조금에도 불구하고 농업 쇠퇴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1년 동안 피땀 흘려 벌어들인 소득이 낮다는 것은 농민의 자존감을 해치고 청년농민 유입에 결정적 장애가 된다. 농업소득을 높이기 위해 농지를 약탈적으로 경작할 수밖에 없고, 이는 생태 환경이나 먹거리 안전을 위협하는 주원인이 된다. 정권마다 단골 구호로 외치는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해서는 농업소득을 최우선 과제로 하는 농정을 실현해야 한다.
이런 답답한 현실 속에서 이번 대통령 당선인의 농정공약도 특별히 기대할 만한 것이 보이지 않는다. 직불금규모를 현재의 두배 수준인 5조원으로 확충하는 것 정도가 구색을 갖춘 듯하다. 그러나 이도 농업의 경쟁력 제고나 농업소득 증가를 위한 정책과는 거리가 멀다.
무엇보다 차기 정부의 농정철학이 무엇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역대 정부와 마찬가지로 ‘농업 패싱’으로 이어지지 않을지 우려스럽다.
농업은 농민과 농촌 유지를 위한 산업적 기반이다. 행복한 농민을 위한 살 만한 농촌을 만들어야 하고, 이를 위한 소득 기반으로서 농업의 지속가능성이 중요하다. 지난 60년간 대한민국의 경제발전 과정에서 소외되고 일방적으로 이용당해온 농업과 농촌 문제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깊이 공감하는 대통령을 진심으로 고대한다.
그러나 기대만으로는 현실이 나아지지 않는다. 농업 패싱은 결과적으로 농업의 책임이다. 농업의 정치력이 그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차기 정부에서도 농업 패싱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1000만 농촌주민의 결속을 바탕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회복해야 한다. 이 어려운 과제가 벼랑 끝 농업을 회생시킬 수 있는 첫번째 단추일 것이다.
양승룡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 농민신문 & nongmi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게시판 관리기준?
- 비방, 욕설, 광고글이나 허위 또는 저속한 내용 등은 사전 통보 없이 삭제되거나 댓글 작성이 금지될 수 있습니다.
- 농민신문
- 페이스북
- 네이버블로그
-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