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일 칼럼] 우리 농업이 CPTPP 파고를 넘으려면

입력 : 2021-11-08 00:00

01010101901.20211108.900036006.05.jpg

임기응변식 피해보전 대책 대신

경영안정장치 등 선제 대응 절실

 

지난해 12월 문재인 대통령의 가입 검토 발언 이후 수면 아래에 잠복해있던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논의가 최근 급물살을 타면서 농업분야의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CPTPP는 2015년 10월 미국 주도로 타결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으로부터 출발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직후 탈퇴하면서 일본·호주·멕시코 등 나머지 11개국이 2018년 3월 CPTPP를 출범, 12월에 발효시켰다. CPTPP는 인구 5억명,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3%, 교역량의 15%를 차지하는 메가 자유무역협정(FTA)이다.

이 협정은 농수산물 및 공산품의 역내 관세 철폐, 이동 자유화, 데이터거래 활성화, 국유기업 보조금 지원 금지, 금융·외국인투자 규제 완화 등을 포함한다. 또 농업을 포함한 무역상품에 원칙적으로 예외 없는 100% 관세철폐를 목표로 하는 매우 높은 단계의 시장개방을 지향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CPTPP 가입은 사실상 대외경제장관회의의 공식 절차만 남겨놓고 있다. 국제적으로는 바이든정부의 복귀가 시간문제로 점쳐지고 있고, 유럽연합(EU)을 떠난 영국이 올 2월 가입 신청을 했다. 9월에는 중국과 대만이 잇따라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러한 최근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기존 회원국 대부분이 농축산물 수출 강국이어서 신규 가입을 위해 전체 회원국과 개별 협상할 때 예상되는 우리농산물 시장의 추가 개방 요구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가 가장 크게 우려된다. 일본도 참가국간의 개별 협상에서 기존 쌀 관세 유지조건으로 호주에 연간 최대 8400t의 쌀 무관세 쿼터를 제공했던 점을 감안할 때 기존 회원국들이 쌀시장 추가 개방이나 쇠고기·원예작물 등 다른 품목의 추가 개방을 요구할 수 있다. 그러면 대내적으로는 품목간 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또 하나의 우려사항은 동식물 위생·검역(SPS) 규정의 ‘구획화’ 문제다. 지금은 특정 국가에서 가축질병이나 식물 병해충이 발생하면 해당 국가 전체나 지역 단위로 수입을 제한할 수 있다. 하지만 구획화 방식이 적용되면 농장이나 도축장 등 하나의 계통단위로 수입 허용을 요청할 수 있어 그만큼 수입을 막을 비관세 조치의 활용폭이 좁아진다.

이러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최선의 대외협상 노력과 함께 사회적 합의 도출을 위한 국내 협상에 모든 지혜와 경험이 동원돼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 정부는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피해대책으로 제시한 ‘세계무역기구협정의 이행에 관한 특별법’부터 한·중 FTA 후속대책인 ‘농어촌상생협력기금’ 설립에 이르기까지 예상 피해규모 추정에 근거를 둔 사후 피해보전대책을 거듭 내놨다. 이같은 사후 조치의 정책효과가 우리 농업의 미래지향적 발전에 크게 기여하지 못한 그간의 사정에 대해서는 새삼 논급할 필요가 없다.

우리 농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선 이제 사후약방문적 접근에서 벗어나 지향해야 할 중장기 농정목표를 새로 세우고, 그에 걸맞은 체계적인 정책수단을 동원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질적 구성을 이루는 100만농가에 대한 평균적 접근을 버리고, 정책 대상을 소규모 부업농, 전업적 주업농, 기업형 조직경영체 등으로 준별해 실효성 있는 맞춤형 정책을 펴야 한다. 일정 규모 이상 농가 및 경영체의 경영투명성을 확보하고 정책 지원의 타당성을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위한 제도적 장치도 마련하지 않으면 안된다.

지금은 우리 농정이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식의 임기응변적 피해보전 대책을 넘어 격랑에 견딜 만한 탄탄한 방파제를 미리 쌓아가는 경영안정장치의 제도화로 선제적 대응을 해가야 할 때다.

정영일 (농촌사랑범국민운동본부 대표·서울대 명예교수)

ⓒ 농민신문 & nongmi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게시판 관리기준?
게시판 관리기준?
비방, 욕설, 광고글이나 허위 또는 저속한 내용 등은 사전 통보 없이 삭제되거나 댓글 작성이 금지될 수 있습니다.
농민신문 및 소셜계정으로 댓글을 작성하세요.
0 /200자 등록하기

기획·연재

많이 본 기사

최신기사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