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했던 여름이 끝나간다. 아직 낮 최고기온은 30℃에 가깝지만 처서가 지났다고 아침저녁 바람이 선선하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말이 지금의 우리에겐 통하는데 급변하는 기후위기 시대에는 이 문장이 언제까지 현실과 맞을지 모르겠다.
폭염 이후 기록적인 폭우를 겪은 최근, 다시 한번 자연의 무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잠깐 비가 그치면 밭에 뛰어나가 작물을 일으켜 세우고 물길을 잡으려 삽질을 했다. 쏟아붓듯이 내리는 비를 보며 생각해보니 올해만이 아니라 최근 몇해간 진짜 한해 한해가 쉽지 않았다. 재작년 여름에는 50여일짜리 장마가 왔었고 작년에는 마른 장마라나 뭐라나 비가 오지 않는 여름과 비가 퍼붓는 가을이 있었다. 올해는 심한 봄가뭄 후에 6월부터 폭염이 오고 이후엔 폭염과 폭우가 번갈아 왔다.
이렇게 해마다 달라지는 예측 불가능한 날씨를 어찌 기후위기라 부르지 않을 수 있을까. 기후위기는 너무나 분명하고 선명해져서 우리의 삶을 꽉 움켜쥐었다. 올해 기록적인 폭우로 사람이 죽고 집이 물에 잠기고 침수차가 1만5000대 가량 생겼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폭우가 내린 여러지역의 논과 밭이 토사에 잠기고 하우스에 물이 들어차고 추석 판매를 앞둔 작물들이 침수피해를 입어 폐기처리해야 할 상황이다.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의 보고서는 앞으로 여름이 더 길어지고 겨울은 더 짧아지며 열대야와 폭염은 점점 늘어날 것이라 예상했다. 세계적인 추세가 이러하다는 것이다. 올해 유럽의 가뭄과 인도의 폭염 등을 보면 이젠 세계 어디라도 기후위기로부터 안전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피할 수 없고 다가올 것이 너무나도 분명히 예측되는 기후위기 시대에 농부가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일까.
기후위기에 발맞춰 탄소저감농법 등 여러 농법들이 난무하는 요즘, 농민은 혼란스럽다. 논에 물을 대면 메탄이 나온다고 농민들에게 중간물떼기하는 농법을 알린다고 하더니 이제는 중간물떼기를 한 논에서 온실가스인 아산화질소가 발생한다고 하는 연구 결과도 나온다.
농사를 식량 생산을 위한 산업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생태계·지역사회와 연결된 유기체임을 인지하고 신중한 해결책을 만들어야 한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에 대응하는 답을 내놓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무엇과 무엇이 연결되어 있는지 전체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재정정책을 만들고 있다. 우리나라는 탄소중립 명목으로 예산이 편성되었으나 이마저도 얼마간 삭감되었다고 한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데는 어마어마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 이번 폭우만 살펴봐도 그러하다. 우리나라도 다가올 다양한 기후위기 상황에 대비해 예산을 책정해둬야 할 때인 듯하다.
그러나 이 예산을 발생한 피해를 복구하고 보전해주는 비용으로 사용할지 아니면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방향으로 사용할지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안정화 (종합재미농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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