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D집다] 농민을 희생양 삼는 ‘CPTPP’

입력 : 2022-07-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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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훈의 소설 상록수를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조선의 부흥은 농촌에 있고, 민족의 발전은 농민에 있다.” 실존 인물 최용신을 모티브로 한 소설 속 채영신이 한 말이다.

상록수를 읽던 16살, 나는 농촌 계몽운동을 이끌던 채영신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농업이라는 분야에 뜻을 가지게 됐고, 뜻을 이루고자 농업계 학교를 거쳐 농부가 됐다.

그러나 젊은 청년이 농촌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욱 큰 노력과 인내가 필요한 일이었다. 지금에야 번듯한 농부가 됐지만 생산부터 가공·판매까지 쉬운 것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마을 공동체의 어르신과 아이들을 돌보는 일 등 젊은이의 손이 닿아야 할 곳도 많았다. 이처럼 농촌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누구나 할 수는 있지만, 이를 지속하는 것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런데도 내가 농업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는 것은 신념과 가치 때문이다. 내 가족이 먹을 수 있는 건강하고 맛있는 농식품을 생산하고 우리 농촌을 가꾸고 지켜야 한다는 신념, 다양한 공익적 가치를 농업으로 수행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렇기에 농업이란 어려운 길의 갈피를 찾아나가며 후배 농민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그러나 이제는 누구에게도 농업의 길을 추천할 수 없다. 어린 시절부터 나를 보면서 농업의 꿈을 키운, 이제 막 귀농한 친동생에게도 더이상 농업의 신념과 가치를 이해시켜주기 어려운 상황이 생겼다. 바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때문이다.

CPTPP는 일본과 캐나다 등 총 11개국이 참가하는 메가 자유무역협정(FTA) 핵폭탄이라고 볼 수 있다.

영국과 중국 등도 가입을 준비하고 있으며, 농산물 관세 철폐율만 보더라도 96.1%, 수산물 100%로 거의 무관세라고 얘기해도 과언이 아니다. CPTPP가 체결되면 우리의 국내 농축수산물의 생산기반은 붕괴할 것이고, 검역장벽이 해제돼 위생과 검역을 통한 수입제한이 사라질 것이다. 농산물 연간 피해액이 최대 2조8000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추정도 있다.

이로써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믿을 수 없는 위험한 수입 농축산물에 노출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왜 나라 발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국민 건강권과 식량주권을 버려야 하는가. 언제까지 농축수산업은 이 거래의 희생양이 돼야 하는가. 왜 나라는 농업·농촌을 지켜야 한다는 이유로 월급까지 주며 육성한 청년농을 외면한 채 사지로 내모는가.

무관심과 무지로 지금이 잘못된 과거가 되지 않도록, 우리의 소중한 먹거리와 환경이 망가지지 않도록 CPTPP를 내려놓아야 할 때이다.

우리 농업·농촌을 지켜내기 위해, 나는 처음 농업을 꿈꿨던 때를 떠올리며 제2의 채영신이 되고자 한다. 작은 시골에 있는 청년농의 큰 바람이 멀리 날아가, 아이를 꼭 안은 엄마, 양복을 차려입은 회사원, 친구의 손을 잡은 학생, 평범한 생활을 누리는 모든 국민에게 닿길 바란다. CPTPP로부터 우리의 농업과 농촌, 자신의 건강권과 먹거리가 함께 지켜지길 희망한다.

안다섬 (장안산할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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