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세계 최상위를 다투는 불명예스러운 지표 몇가지가 있다. 이 가운데 양분수지(작물에 흡수되지 못하는 양분)가 세계 1∼2위를 다툰다는 것을 비농업인들은 잘 모를 것이다.
우리나라는 인구밀도가 높고 농경지 면적은 좁아서 식량 생산을 위해 토지면적당 생산성을 높이는 농업을 추구해왔다. 특히 우리나라 토양은 태생적으로 양분이 부족했기 때문에 비료를 많이 뿌려주는 것이 관행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대한민국학술원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1980년대까지는 비료 사용량에 비례해 식량 생산량이 증가했지만 이후에는 그동안 투입한 비료가 토양에 쌓인 탓에 추천 시비량보다 비료를 많이 뿌리더라도 식량 생산량이 더는 증가하지 않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식물이 흡수하지 못하는 양분은 비가 오면 지하수나 지표수로 씻겨나가서 먹는 물을 오염시키고 녹조와 같은 수질오염을 일으키기 때문에 많은 나라에서는 양분수지를 낮추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양분수지를 개선하기 위한 출발점은 당연히도 시비량을 줄이는 것이지만 이미 관행으로 자리 잡은 농사법 때문에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래서 2018년 정부가 나서서 농민들을 교육하고 시비량을 줄이도록 유도하는 농업환경보전프로그램을 도입했다. 농업환경보전프로그램은 비단 시비량 저감뿐 아니라 농약 사용량도 줄이고 농경지 토양 유실을 방지하는 활동은 물론 농촌마을 경관 개선과 전통농업유산 보존 활동도 지원한다.
최근 전남대학교가 한국농어촌공사 요청으로 수행한 연구에 의하면 농업환경보전프로그램에 대한 주민 만족도는 꽤 높았으며 특히 주민들은 마을 경관 개선과 공동체성 회복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정책당국 만족도는 그리 높지 않은 것 같다. 농업환경보전프로그램 사업을 5년간 이행했지만 우리나라 양분수지는 개선되지 않았고 친환경인증 농경지 면적은 오히려 감소했기 때문이다.
고전역학 운동법칙 가운데 관성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누구나 수십년 된 습관을 바꾸기가 쉽지 않듯이 기존 농사법을 바꾸기도 쉽지 않다. 또한 헤겔의 변증법에는 양질 전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물을 가열한다고 바로 끓지 않고 열이 축적돼 임계점인 100℃를 넘어야 끓듯이 일정한 양이 축적돼야 질적으로 바뀐다는 의미다. 결국 농업환경 개선을 위해서는 농민들의 지속적인 노력과 그 노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정부의 인내와 투자가 필요하다.
현재의 관행농업이 수십년간 정책당국 지원 또는 방조에 의해 전국적으로 이뤄진 것임을 감안한다면 5년이라는 시간과 그간 농업환경보전프로그램 참여마을 규모로는 당장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농업환경 개선을 위한 정부 지원과 투자는 좀더 다면적으로 진행될 필요가 있다. 현재 농업환경보전프로그램 중 마을경관 개선 활동은 직접적인 농업환경 개선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농촌 공동체성 회복을 통해 마을주민의 농업환경보전프로그램 사업 참여도를 높일 수 있으므로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또한 현재 양분 관리에 집중된 정부와 농민의 관심을 토양 유실 방지와 온실가스 배출 저감, 더 나아가서 토양 탄소 저장 등 기후위기에 대응한 식량안보 기반 구축으로 확대하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화학비료와 합성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기존 친환경인증 농가들이 토양 유실 방지와 온실가스 배출 저감 활동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최우정 (전남대 교수·기후변화대응농생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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