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0월이 되면 가축질병으로 축산업계에 몸담은 사람들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이미 조류인플루엔자(AI)가 야생조류 분변에서 발견돼 가금류 농장들이 경계하고 있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도 2019년 9월 비무장지대(DMZ) 인근을 중심으로 발생한 이후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ASF는 우리나라보다 먼저 발생한 유럽연합(EU)의 여러 나라에 비해 국가 방역이 철저하게 이뤄지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 ASF가 2018년에 9월에 발생한 벨기에는 야생멧돼지에서 ASF 바이러스가 발견된 후 차단울타리를 신속하게 설치해 바이러스 박멸에 집중했다. 6000㏊에 이르는 지역에서 서식하던 야생멧돼지 2730마리를 사살했는데 이 가운데 809마리에서 ASF 바이러스가 검출됐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해당 지역 내 67개 양돈장의 5000여마리 가축을 안락사하지 않고도 ASF를 박멸했다는 점이다. 벨기에는 2020년 10월 세계동물보건기구(OIE)로부터 ASF 청정국 지위를 되찾았다.
양돈 선진국 덴마크도 벨기에처럼 신속 정확하게 ASF 차단방역을 시행했다. 유럽에서 ASF가 다시 문제가 되자 덴마크 정부는 2019년말까지 자국 내에서 서식하는 야생멧돼지를 모두 살처분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상황에서 모피 생산용 밍크가 코로나19 바이러스 숙주가 된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밝혀졌다. 이에 덴마크 정부는 정부·밍크농장·생산자단체·동물보호단체 등과 회의를 거쳐 밍크 사육이 사람의 생명을 위협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당시 덴마크에서는 사육하던 밍크 개체를 파악해 1800만여마리를 모두 살처분하고, 대신 밍크농장에 합당한 보상을 했다.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동물보호단체까지 설득해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고 신속 정확하게 방역정책을 마무리했다.
우리나라는 야생멧돼지에서 ASF 바이러스가 발견된 후 반경 10㎞ 이내를 방역대로 설정해 그 안에 있는 모든 야생멧돼지와 양돈장 돼지들을 살처분했다. 2019년에만 248개 양돈장에서 돼지가 38만마리 넘게 살처분됐다. 정부는 ASF 바이러스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초동진압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무리한 방역정책을 추진했지만 여전히 ASF는 DMZ 부근부터 충북 보은, 경북 상주까지 야생멧돼지를 통해 확산되고 있다.
벨기에·덴마크와 달리 아직도 국가 지정 법정전염병들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산악지형이라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있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허술한 곳이 생기는 울타리만 칠 것이 아니라 국내에 서식하는 야생멧돼지를 모두 살처분하는 방법은 왜 채택하지 못하는지 의문이다. 벨기에나 덴마크에선 야생멧돼지를 짧은 시간에 없애기 위해 군대까지 동원해 효율적인 살처분을 진행했다. 우리나라에서 야생멧돼지가 국내 환경·자연 보호에 어떤 긍정적 영향을 주는지 이해가 되지 않고, 매년 농작물 피해는 물론 인명·재산상 손해도 초래한다. 야생멧돼지를 보호하는 것이 환경보호라는 맹목적인 생각으로 유해동물을 그대로 방치하는 한 우리나라에서 ASF 근절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대다수 양돈전문가들 의견이다.
또 다른 문제는 양돈장에서 사육하는 돼지와 생리적으로 거의 같은 야생멧돼지의 관리부처가 농림축산식품부가 아니라 환경부라는 점이다. 야생동물로 인한 가축질병 방역이 정부 안에서 엇박자가 나는 현실은 조속히 개선돼야 한다. 정부가 이미 검증된 방역을 실행해서 국내산 고급 단백질을 소비자들에게 공급하는 축산농가의 시름이 속히 사라졌으면 한다.
김유용 (서울대 식품·동물생명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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