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의 의학이야기] 셀프 처방의 위험성

입력 : 2021-12-01 00:00 수정 : 2021-12-01 00:39

01010101801.20211201.900037872.05.jpg

‘말라리아약, 코로나에 효과’

사실상 잘못된 보도였지만 제약사 “임상시험 돌입” 선언

사재기 열풍…결국 효능 없어

‘구충제로 암 치료’ 소문 믿고 치료 시기 놓친 사례 본보기로
 

“피라맥스라고 알고 계신가요?”

2021년 10월8일, 국정감사에서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서울 광진을)이 식품의약품안전처장에게 질의한다. 피라맥스는 신풍제약이 2011년 만든 말라리아 치료제다. 말라리아는 전세계에서 50만명을 죽이는 무서운 질환이지만, 환자의 대부분은 아프리카에 국한된다. 국내에서도 말라리아가 발생하지만 이는 사람을 죽이지 않는 온순한 종이며 환자수도 1000명을 넘지 않는다.

그래서 피라맥스는 2011년 허가받은 뒤 주로 동남아시아 등에서만 판매돼왔을 뿐 국내에서 처방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한해 50∼80건이 고작이며 2019년 처방건수는 3건에 불과했을 정도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2020년초 말라리아약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효과가 있다는 보도가 나온 것이다. 여기서 말한 말라리아약은 클로로퀸으로, 피라맥스와는 다른 약이다.

하지만 이 기회를 놓치기 싫었던 신풍제약은 피라맥스를 가지고 코로나19 임상시험을 하겠다고 선언한다. 일반인들은 클로로퀸과 피라맥스가 전혀 다른 약이라는 걸 알지 못했고, 그저 우리나라 회사가 만든 약이 코로나19 치료제로 쓰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열광했다. 6000원대에 머물던 신풍제약의 주가는 곧 1만원을 돌파했다. 그러는 동안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클로로퀸이 코로나19에 효과가 없다고 발표했지만, 피라맥스의 상승세는 계속됐다. 결국 신풍제약은 2020년 9월, 주가가 21만원까지 뛰면서 바이오업계 최고의 신데렐라가 된다.

다시 국감장으로 돌아가보자. 식약처장이 피라맥스를 들어본 적이 있다고 답하자 고 의원이 질의를 이어간다. “작년말 사재기 열풍이 있어서 보도도 난 바 있어요. 이게 먹는 코로나 치료제라고 알려지면서 논란이 있었고요.”

원래 약은 임상시험 3상을 마친 뒤 시중에 출시되는 게 원칙이다. 피라맥스는 이미 허가를 받은 약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말라리아 치료에 국한된 것일 뿐 코로나19 치료제로 인정받으려면 그에 관한 임상시험을 충족해야 한다. 하지만 피라맥스와 사랑에 빠진 주주들은 이 약이 코로나19의 치료는 물론 예방도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그들은 피라맥스가 감기 같은 호흡기 질환에도 특효약이라고 생각하고 의사를 찾아가 “동남아에 갈 건데 피라맥스를 처방해달라”고 부탁했다.

그 결과 피라맥스의 처방액은 지난해 5월 4000만원, 8월 1억6000여만원으로 늘었고, 코로나19 확진자가 크게 증가한 12월에는 1억9000만원에 달했다. 2020년 한해 동안 처방횟수는 무려 1만회. 주주들이 활동하는 카페에는 피라맥스 복용으로 효과를 봤다는 체험담이 잔뜩 올라와 있다. 고 의원은 이게 잘못된 현상이라고 지적한 것이다.

“그 당시 임상시험 2상이 진행 중이었던 상황이었고, 여기에 대해 해당 제약사는 이게 말라리아약이다, 그러므로 코로나 치료제를 위한 연구가 완료된 것은 아니다, 이런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게 시장에서 꽤나 많이 팔리고 있었거든요. 2021년에도 1월부터 5월 사이 2500개가 청구된 것으로 기록에 나오고 있습니다.”

모든 약에는 부작용이 있다. 따라서 약은 특정 질병이 생겼을 때 정해진 용량만 복용하는 게 맞다. 피라맥스가 출시된 지 10년이 지나 안전성이 검증된 약이라 해도 과다하게 복용하면 간과 신장에 문제가 생기는 등 부작용이 있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올 7월에 발표된 임상시험 2상 결과를 보면 피라맥스는 코로나19 치료에 별다른 효과를 보이지 못했다. 그런데도 주주들은 몸이 안 좋을 때마다 피라맥스를 먹는 등 셀프 처방을 해댔다. 의사들이 의도를 의심해 피라맥스를 처방해주지 않자 ‘의약분업 예외 지역에서는 처방전 없이 약국에서 살 수 있다’는 정보를 이용해 약을 사재기까지 했다.

아마도 그들은 기꺼이 임상시험 대상이 됨으로써 어서 빨리 피라맥스가 코로나19의 약으로 인정받기를, 그래서 주가가 오르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강아지 구충제인 펜벤다졸이 암 치료에 좋다는 소문이 돌아 치료 시기를 놓친 사례에서 보듯, 셀프 처방은 득보다 실이 훨씬 많은 행위다. 고 의원의 지적을 받은 뒤 보건복지부는 피라맥스가 본래 목적 이외로 판매됐다면 행정처분을 받는다고 경고했다.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

ⓒ 농민신문 & nongmi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게시판 관리기준?
게시판 관리기준?
비방, 욕설, 광고글이나 허위 또는 저속한 내용 등은 사전 통보 없이 삭제되거나 댓글 작성이 금지될 수 있습니다.
농민신문 및 소셜계정으로 댓글을 작성하세요.
0 /200자 등록하기

기획·연재

많이 본 기사

최신기사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