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의 의학이야기] 간은 소중하다

입력 : 2021-1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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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B형간염 치료법 없어

간경화와 간암으로 진행돼 10대 양성률 14.2%로 높아

1983년 백신 ‘헤파박스’ 등장

중증으로 가는 환자 줄었지만 절주 등 건강한 습관 유지해야

 

대학 때, 시험공부를 같이 하기 위해 친구네 집에 갔다. 당시 만난 친구 아버지는 훤칠한 얼굴에 풍채도 좋았다. 야, 너희 아버지 멋있네. 배우 남궁원 같아. 그 아버지를 다시 본 건 대학을 졸업한 직후, 처음 뵀을 때부터 따지면 겨우 3년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다. 처음에는 아버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살이 빠진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낯빛이 너무 좋지 않았으니까. 아버님이 간경화로 고생하신다는 얘기를 듣긴 했는데 병의 진행이 저렇게나 빠르다니 놀랄 일이었다. 그 다음으로 아버님을 뵌 것은 병실에서였다. 입원 전 목욕탕에서 피를 토했는데, 그 양이 어찌나 많은지 보기 힘들 지경이어서 응급실로 입원하셨단다.

정상적인 경우 소화기관을 흐르던 혈액은 간으로 전달된다. 그 혈류를 통해 우리가 흡수한 각종 영양분이 간으로 전달돼 글리코겐으로 저장되고, 또 단백질로 만들어진다. 그런데 간경화는 간이 딱딱해지는 질환이라 혈액이 간으로 가는 게 어려워진다. 정체된 혈액이 혈관 밖으로 스며들어 복수가 차기도 하고, 혈관이 감당하지 못하고 터져서 피를 토하기도 한다. 친구 아버지는 이미 그 단계에 접어든 상태였다. 당시만 해도 간이식이 대중화되지 않았던 때라 간경화는 치료방법이 없었다. 오죽하면 의대 친구들 사이에서 “암적 존재보다 더 무서운 말이 간경화적 존재”라는 농담이 떠돌았을까. 결국 그 해를 넘기지 못한 채 친구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간경화의 주된 원인은 B형바이러스에 의한 간염이었다. 친구 아버지 역시 그랬다. B형간염은 치료법 자체가 없었기에 간염은 간경화로 발전하고, 또 간암이 됐다. B형간염을 20년 앓으면 그중 절반이 간경화가 된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였다. 우리나라는 유난히 B형간염이 많아 1982년 양성률이 8.6%나 됐다. 혈액을 통해 전파되는 경우도 있지만, B형간염에 걸린 산모가 태아에게 직접 전파하는 소위 수직감염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10대 양성률이 14.2%로 가장 높았고, 10세 미만도 4.5%나 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김정룡 서울대학교 의대 교수는 연구에 몰두, 1971년 B형간염 항원을 분리한 데 이어 1977년에는 드디어 백신 개발에 성공한다. 이것이 임상시험을 거쳐 ‘헤파박스’라는 이름으로 시중에 나온 건 1983년. 이후 1995년부터 국가가 주도적으로 나서 백신을 접종하면서 B형간염 양성자의 비율은 눈에 띄게 감소했다. 1982년 8.6%였던 양성률은 1998년 4.6%가 됐고, 2011년에는 3%가 된다. ‘아직도 많구나’라고 생각하겠지만, 양성자 대부분은 나이 든 사람들이며, 문제가 됐던 10대 이하의 양성률은 0.1% 미만에 불과하다. 이런 식이면 앞으로 30년쯤 지났을 때 최소한 B형간염에 의한 간경화나 간암은 이 땅에서 사라질 것으로 예측된다.

물론 B형간염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C형간염 바이러스도 간경화·간암을 일으킬 수 있다. 다행히 C형은 B형만큼 잔인하진 않아 중증으로 진행되는 비율이 훨씬 떨어지지만 그래도 신경이 쓰이는 건 맞다. 게다가 C형은 아직 백신이 없는 상태. 이건 도대체 어떻게 치료해야 할까? 정말 다행스럽게 C형간염 바이러스를 치료하는 약제가 나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인류가 속수무책인 이유가 마땅한 치료제가 없기 때문이라는 걸 생각한다면 치료제가 나온 건 커다란 축복이라 할 만하다. 과거에는 인터페론처럼 주사를 통한 치료만 가능했지만 최근에는 좋은 알약이 나와 효과는 높이고 부작용은 줄일 수 있게 됐다. 그러니 C형간염 때문에 간경화·간암이 생기는 경우는 점점 찾아보기 어려울 것 같다. 신규 만성 C형간염 환자가 2016년 1만4087명에서 2020년 8647명으로 5440명이 감소했다는 통계도 이를 뒷받침한다.

과거에는 내과에서 ‘간’ 분야가 인기였지만 지금은 기피하는 분야가 됐다나. B형·C형 간염의 몰락. 그렇다고 해서 간에 대한 걱정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건 아니다. 바이러스에 의한 간경화가 줄어드는 대신, 알코올에 의한 간경화가 증가했다지 않은가?

아무리 좋은 치료법이 있다고 해도 자기 간을 잘 보존하는 게 가장 좋은 건강 비결이다. 건강한 생활습관을 유지하는 것은 물론 시시때때로 간 검사를 하자. 간은 소중하니까.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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