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의 의학이야기] 비아그라와 기생충

입력 : 2021-10-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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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정력제로 여겼던 뱀 농구스타도 즐겨 먹었지만 특별히 더 좋다는 근거 없어

날로 먹으면 기생충 감염돼 오직 수술로 제거할 수 있어

비아그라 출시로 뱀은 ‘살맛’

 

“서장훈의 26년 농구 인생을 지켜준 특급 보양식은 수백마리의 뱀을 고아 만든 뱀 엑기스였다.”

지금 젊은 세대는 이해 못하겠지만, 뱀이 정력제로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 그때만 해도 뱀탕을 파는 집이 ‘건강원’이란 간판을 내걸고 영업을 했고, 몸이 허하다고 생각되는 이들이 몰려가 뱀탕을 먹곤 했다. 일부 사람들은 살아 있는 뱀을 그냥 먹기도 했다.

민간요법이 다 그렇듯 뱀이 특별히 몸에 좋다는 근거는 없다. 뱀이 고단백 음식인 건 맞지만, 등푸른생선을 비롯해 시중에는 뱀을 대체할 수 있는 음식이 많기 때문이다. 다만 인터넷에 떠도는 “뱀의 교미시간은 평균 6시간이며 길게는 8시간30분”이라는 ‘카더라’를 보면 왜 사람들이 뱀을 즐겨 먹는지 짐작할 수 있다. 비뇨기과 의사가 쓴 칼럼에는 이게 75시간으로 나와 있기도 한데, 이런 걸 보면 뱀이 다른 동물보다 오래 교미하는 건 맞는 것 같다.

문제는 교미시간이 긴 동물을 먹으면 정력이 좋아진다는 단순한 인식이다. 이런 식이라면 달리기의 왕인 치타를 잡아먹으면 누구나 우사인 볼트가 될 수 있으며, 호랑이를 먹으면 싸움을 잘하게 될까? 이런 반박에도 불구하고 뱀은 정력제로 널리 사랑받았고, 서장훈과 허재 같은 농구스타마저 뱀을 먹었다.

또 다른 문제는 뱀에 치명적인 기생충이 있다는 것이다. 스파르가눔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기생충은 뱀과 개구리를 생식할 때 인체에 감염된다. 대부분의 기생충이 인체에 별다른 증상을 일으키지 않지만, 스파르가눔은 몇 안되는 예외 중 하나다. 기생충의 목표는 짝짓기를 통한 자손 번식인데, 짝짓기는 오직 종숙주(Final Host)에서만 이루어진다.

그런데 스파르가눔의 종숙주는 개·늑대·고양이 등이며, 사람은 종숙주가 아니다. 사람 몸에 들어온 스파르가눔은 어서 이곳을 탈출해 종숙주로 가야겠다는 마음으로 우리 몸 이곳저곳을 방황하는데, 피부·뇌·고환·척추신경·눈 등등 안 가는 곳이 없을 정도다. 스파르가눔의 길이는 최소 10㎝에서 최대 70㎝에 이른다. 이 정도 되는 기생충이 온몸을 휘젓고 다니는데 증상이 안 생길 수가 없다. 약도 듣지 않고 오직 수술로만 제거할 수 있는 데다 수명도 20년이 넘어, 뱀을 날로 먹었다가 고생한 이는 한둘이 아니다.

특히 다음 사례는 너무도 안타깝다. 뱀과 개구리를 즐겨 먹던 33세 남자가 자신의 고환이 커진 걸 발견했다. 효과가 있다고 좋아하다 점점 커지는 고환이 신경 쓰여 병원에 갔더니 스파르가눔이 고환을 침범했단다. 결국 그 남자는 왼쪽 고환을 떼어내야 했다.

또 다른 사례. 과거 군 특수부대는 생존훈련이란 걸 했다. 험난한 산에 떨어뜨려 놓은 뒤 자기 부대를 찾아오게 하는 훈련인데, 문제는 이들에게 먹을 것을 일절 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할 수 없이 병사들은 뱀 같은 걸 먹으면서 배고픔을 견뎠는데, 그 과정에서 스파르가눔에 감염된 병사들이 생기는 건 당연했다. 스파르가눔의 수명이 길다보니 제대 후 발견되는 경우도 흔했으며, 한 병사는 잊을 만하면 기어 나오는 스파르가눔 때문에 6번이나 수술을 하기도 했다.

1999년, 우리나라에 비아그라가 출시됐다. 발기부전을 고쳐주는 확실한 약이 나오면서 사람들은 효과가 불확실한 뱀을 찾지 않았고, 스파르가눔 환자도 시나브로 줄어들었다. 비아그라를 가장 반긴 이는 뱀이었다. 붙잡혀서 정력제로 소비될까 두려움에 떨 필요가 없어졌으니 말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일이 생긴다. “지난 11일 대구 범어네거리에서 운행 중인 차 보닛에서 약 2m 길이의 뱀이 튀어나오는 영상이 공개됐다.” “전남 강진의 한 식당에 뱀이 출몰한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전남 나주의 한 어린이집에 뱀이 출몰해 소방관이 포획한 뒤 방생했다.” 이런 걸 전문용어로 ‘살판났다’고 한다.

뱀 자체는 그리 공격성이 크지 않고 독이 있는 경우도 드물지만, 뱀에 대한 사람들의 근원적인 두려움을 생각하면 땅꾼들이 뱀을 마구잡이로 잡던 그때가 더 좋았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기생충학자 입장에선 스파르가눔보다 뱀과 더불어 사는 게 훨씬 더 낫다. 몸 밖으로 끌려 나온 70㎝짜리 스파르가눔의 모습을 본다면 독자 여러분도 내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까? 그래서 말한다. 비아그라 만세.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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