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의료비 저렴한 이유, 약값 등을 싸게 책정하기 때문
제약회사 공급 거부로 번지기도 결국 부르는 대로 값 쳐줘야 해
알뜰함 좋지만 지나치면 ‘궁상’
얼마 전 발표된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병원에서 외래진료를 받는 횟수는 1년에 17.2회란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단연 1위로, OECD 평균인 6.8회를 뛰어넘는다. 우리나라 국민이 다른 나라보다 더 아파서 그런 건 아니다. 집 가까운 곳에 병원이 있고 의료비가 상대적으로 싸기 때문이다. 병원을 자주 가는데도 국민이 쓴 의료비가 OECD 평균보다 낮다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 그렇다고 의료의 질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우리 국민의 수명은 83.3세로 OECD 평균보다 두살 많다.
비결이 뭘까? 설마 우리나라 의사들이 다른 나라 의사들보다 돈 욕심이 없어서일까? 답은 전 국민이 가입한 건강보험 때문이다. 의사들의 진료행위와 약값, 다시 말해 우리 건강과 관련된 모든 의료비는 건강보험이 결정하는데 그게 지나치게 싸게 책정돼 있다. 예컨대 맹장수술의 가격은 미국의 7분의 1이고, 호주의 2.7분의 1이며, 독일이나 프랑스보다 1.5배 싸다. 절대 가격도 싸지만 국민소득에 비해서도 압도적으로 싸다. 의사 입장에서 억울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의사를 하는 한 어쩔 수 없다.
더 억울한 건 다음이다. 암이 의심되는 환자에게 의사가 컴퓨터단층촬영(CT)을 세번 찍었다고 치자. 원래는 건강보험에서 세번 찍은 가격을 지급해야 하건만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의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두번만 찍으면 충분할 텐데, 왜 세번이나 찍었냐? 두번 값만 주겠다.” 건강보험공단은 이렇듯 알뜰하다. 내는 사람 입장에서야 건강보험료가 비싸게 느껴지겠지만, OECD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싼 보험료를 징수하면서도 건강보험 재정이 엄청난 적자를 기록하지 않는 건 건강보험공단이 환자 편에 서서 의사를 착취해온 덕분이다.
문제는 모든 이가 건강보험공단의 착취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보자. 어린이들의 심장수술에 꼭 필요한 게 인공혈관이다. 이건 우리나라에서 만들지 않기에 외국 것을 수입해야 하며 그간 ‘고어사(社)’라는 미국 회사가 인공혈관을 공급해왔다. 그런데 건강보험공단이 인공혈관 가격을 너무 싸게 책정한 탓에 고어사가 화가 난 것이다. 계속 값을 올려달라고 요구했지만 건강보험공단이 끝까지 거부하자 고어사는 “이제 너희한테 안 팔겠다”며 철수해버렸다.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뉴스 기사를 보자. “선천성 심장병을 앓고 있는 세살 민규는 이미 두차례 수술을 받았습니다. 마지막 3차 수술만 받으면 건강을 찾을 수 있지만 수술 날짜는 무기한 연기됐습니다. 수술 재료가 없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당사자와 그 가족이 얼마나 분노했을까 싶지만 고어사 말고 인공혈관을 만드는 곳이 없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결국 정부는 백기투항했고, 건강보험공단은 고어사가 부르는 대로 값을 쳐줘야 했다. 간암치료제인 리피오돌도 비슷한 결말을 맞았다. 이 약을 만드는 프랑스 회사의 압력에 굴복해 가격을 3.6배 인상시켜주기로 한 것이다.
물론 결말이 다 이런 건 아니다. 눈의 압력이 높아지는 녹내장을 수술하려면 미토마이신이라는 약이 있어야 한다. 그간 일본 제약회사가 만든 약을 써왔는데, 2019년 1월 제약회사 측이 너무 가격이 싸다며 한국에는 더이상 팔지 않겠다고 선언해버렸다.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고어사에 당한 것처럼 정부가 굴복하는 상상을 했겠지만 이번에는 해피엔딩이었다.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이 그 약을 만들어 공급하겠다고 한 것이다. 회사 대표의 말은 사뭇 감동적이다. “채산성은 맞지 않지만 제약사의 책임을 다하고 의약품 주권 확보를 위해서라도 계속해서 약을 만들겠다.”
하지만 모든 회사가 다 한국유나이티드제약과 같을 수는 없다. 기업은 사회적 책임도 져야 하지만 이윤도 어느 정도 남겨야 생존할 수 있으니 말이다. 국내 최초로 슈퍼항생제 개발에 성공한 동아에스티라는 제약사는 건강보험공단이 지나치게 약값을 후려치자 우리나라에는 팔지 않겠다고 선언해버렸다. 애써 개발한 약을 팔지 못하는 현실은 그저 씁쓸하다. 우리나라에서 신약이 나오지 않는 건 제약회사의 능력이 떨어지는 탓이겠지만 건강보험공단이 너무 알뜰한 것도 한 이유이리라. 그래서 말씀드린다. 알뜰한 건 좋지만 그게 지나치면 ‘궁상떤다’가 된다.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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