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혈관 부푸는 ‘뇌동맥류’ 대부분 증상 없어 발견 어려워
1년 안에 터질 확률 1% 미만 수술보다 경과 관찰 일반적
건강한 생활 유지로 예방 가능 담배·술·고지방 식사 피해야
1년 전 내 지인은 아슬아슬한 경험을 했다. 건강검진을 비싼 걸로 받았더니 뇌 컴퓨터단층촬영(CT)까지 찍게 됐는데, 검진 담당 의사에 따르면 뇌동맥류 같단다. “뇌동맥류? 그게 뭔데요?” 의사가 대답한다.
“혈관에 혈관벽이 있듯이 뇌동맥에도 벽이 있습니다. 그 벽이 어떤 이유로든 약해진다고 해봅시다. 그 부분에 혈액이 몰려 혈관이 부풀어 오르겠지요. 동맥은 높은 압력으로 혈액을 보내는데, 꾸준히 압력이 가해지다보면 부푼 곳이 점점 커져 풍선처럼 됩니다. 이게 바로 뇌동맥류죠.”
풍선에 바람을 계속 불어넣으면 터지기 마련이다. 뇌동맥류도 마찬가지다. 실제 사례를 들어보자. 38세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주위 사람들이 그를 응급실로 데려갔는데, 알고보니 그의 오른쪽 뇌에 있던 뇌동맥류가 터진 결과였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뇌졸중의 상당수가 이렇게 뇌동맥류에 의해 생기니, 뇌동맥류는 매우 무서운 존재다.
황당한 일은 뇌동맥류가 발견됐다고 얘기하니 주위 사람들이 다 축하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수술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잘됐다니, 남의 일이라고 너무 막말하는 것 아닌가? 날 만났을 때 그는 이 상황에 대해 개탄해 마지않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건 잘된 일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먼저 좋은 측면. 뇌동맥류는 발견 자체가 어렵다. 주위 조직을 압박해 두통 등의 증상을 일으켜 발견될 수도 있지만 대부분 뇌동맥류는 별다른 증상이 없다. 일단 터지고 나면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는 게 쉽지 않다는 점에서 뇌동맥류는 머릿속에 폭탄이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폭탄을 미리 발견해 해체할 수 있다면 그걸 축복이라 부른다 해도 지나친 건 아니다.
그 다음으로 나쁜 측면. 뇌동맥류가 터질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통계에 따르면 보통 뇌동맥류가 1년 안에 터질 확률은 1% 미만이란다. 그래서 뇌동맥류가 있다고 다 수술하는 것은 아니다. 계속 검진을 받으면서 경과를 보는 게 일반적인 선택이다. 이 분야 명의로 소문난 최석근 경희대학교병원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커피를 들고 거리를 다닐 때 쏟을까 걱정하는 사람은 없다. 그냥 조심스럽게 들고 다니면 된다. 뇌동맥류도 마찬가지다. 생활패턴을 건강하게 유지하면 충분히 안 터지게 할 수 있다.”
여기까지 읽으면 ‘이게 무슨 나쁜 측면이냐?’고 항의할 수 있겠다. 살면서 배운다. 차라리 알지 않았으면 좋았을 게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를. 인터넷에 심심하면 올라오는 ‘내 여친의 과거’라는 제목의 글을 보면서 우리가 혀를 끌끌 차는 것도 그 때문 아니겠는가?
뇌동맥류도 마찬가지다. 위에서 뇌동맥류가 터지고 나면 예전으로 돌아가기 힘들다고 했지만, 터지기 전의 뇌동맥류를 발견해도 그건 마찬가지다. 아무리 터질 확률이 1%라 한들 그게 자신의 머릿속에서 터지면 끝장인데 이걸 어떻게 놔두겠는가? 포털사이트에는 뇌동맥류의 존재로 힘들어하는 글이 한둘이 아니다. “뇌동맥류가 있다는데요, 의사는 그냥 놔두라는데 너무 무서워요.” “3㎜ 크기라는데, 수술 안받아도 되나요?” “스트레스 받아서 터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환자들은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한다. ‘불안에 떨며 사느니 그냥 수술 받자’. 의사들 중에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 ‘추적 관찰하자고 했는데 갑자기 터지면 어쩌지? 그냥 수술하는 게 낫지 않을까?’ 가뜩이나 의사와 환자의 신뢰가 낮고, 일이 생기면 소송으로 직행하는 경우도 잦은 상황인 만큼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그냥 놔둬도 되는 뇌동맥류를 수술하는 경우가 잦다. 자초지종을 듣고 난 지인이 “괜히 비싸게 건강검진을 했다”며 후회하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터질 위험성이 높아 보이는 동맥류는 당장 수술하는 게 맞다. 수술을 하려면 두개골을 열어야 하는데, 모든 수술이 다 두개골을 여는 것은 아니다. 위치에 따라 코일 같은 것으로 동맥류를 막는 방법도 있다.
중요한 이야기 하나. 담배와 술, 그리고 고지방 식사는 뇌동맥류를 잘 생기게 하는 생활습관이다. 이 세가지를 모두 하면서 뇌동맥류 걱정을 하는 것은 커피를 손에 들고 달리면서 커피가 안 쏟아지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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