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한 살충제 ‘DDT’ 개발 전세계 말라리아 사망자 급감
생태계 파괴·발암 등 이유로 환경단체들 사용 금지 촉구
유해성 검증 후 다시 사용되지만 모기도 저항성 생겨 효과 줄어
말라리아라는 기생충이 있다. 사람 눈치를 보며 사는 다른 기생충과 달리 말라리아는 사람 죽이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악한 존재인데,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19년에 말라리아로 죽은 이가 무려 40만여명에 달한다고 한다. 사망자 중 67%는 5세 이하의 어린이다.
그래도 과거에 비하면 사정이 좀 나아진 편이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해마다 말라리아로 죽는 환자가 300만명을 넘었으니 말이다. 사망자의 급격한 감소는 중국에서 개발된 말라리아 약 덕분이다. 문제는 이 약에 저항성을 갖는 말라리아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백신이라도 있으니 희망을 가져보지만 말라리아는 백신을 만드는 것도 어려우니 맞서 싸우기가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말라리아는 인류가 탄생한 순간부터 함께한 병원체다. 고대 로마인들의 기록에는 말라리아에 걸릴까봐 밤에 집 밖으로 나가는 걸 삼갔다는 내용이 적혀 있을 정도다. 말라리아는 ‘나쁘다’는 뜻을 가진 ‘말(Mal)’에 ‘공기’라는 뜻을 지닌 ‘아리아(Aria)’가 합쳐진 단어로 과거에는 말라리아가 쓰레기를 태운다든지 할 때 발생하는 나쁜 공기 때문에 생긴다고 여겼기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다행히 1890년대 들어 모기가 전파자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이로 인해 예방과 박멸이 가능해졌다. 모기에 안 물리면 말라리아에 걸리지 않을 수 있고, 모기를 다 없애버리면 말라리아 박멸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모기는 1억5000만년 전부터 살았던 존재다. 온갖 위기를 넘기며 버텨온 모기를 무슨 수로 박멸하겠는가?
그런데 하마터면 말라리아가 박멸될 뻔한 적이 있었다. 강력한 살충제를 만들겠다는 꿈을 가졌던 폴 헤르만 뮐러(Paul Hermann Muller)라는 학자가 350번의 실패 끝에 드디어 디디티(DDT)라는 엄청난 살충제를 만들어낸 덕분이었다. DDT가 어찌나 강한지 지구상의 곤충들은 DDT에 스치기만 해도 순식간에 죽어버렸고, 한번 뿌려놓으면 독성이 수년간 보존될 정도였으니 곤충에게는 거의 재앙이었다. DDT의 발명에 크게 기뻐한 보건당국은 세계 곳곳을 다니며 DDT를 뿌려댔다. 곤충을 매개로 한 질병도 크게 줄어들었는데 말라리아도 예외가 아니었다. 예컨대 말라리아의 유행지였던 인도는 1953년 사망자가 80만명이었지만, DDT가 살포된 이후인 1966년에는 한명도 죽지 않았다. 이 기간 동안 평균수명도 32세에서 52세로 늘어났다.
DDT가 계속 이용됐으면 말라리아는 어쩌면 지구상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되지 않았다. 레이첼 카슨은 <침묵의 봄>이라는 책에서 DDT가 환경을 오염시키고 야생동물을 죽인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DDT는 인체에 쌓여 암을 유발한다고도 했다. 이 책이 출간된 후 결성된 환경단체들은 DDT를 규탄했고, 이들의 압력에 굴복한 보건당국은 결국 DDT 생산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전열을 재정비한 모기들은 다시 개체수를 늘렸고, 한동안 숨죽여 지내던 말라리아도 원래 하던 인명 살상을 재개했다. 스리랑카의 경우 280만명이던 말라리아 환자수가 DDT 살포 이후인 1965년 17명으로 크게 줄었지만, DDT 사용 금지 후 5년이 지나자 환자수는 50만명이 됐다. 아프리카는 병원에 입원한 환자의 3분의 1이 말라리아였을 정도였다.
DDT가 아주 해로운 살충제였다면 비록 말라리아 박멸에 효과가 있어도 금지하는 게 맞을 것이다. 하지만 연구 결과 DDT는 사람에게 암을 일으키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고, 생태계에 미치는 해악도 그리 크지 않았다. 미국 국립보건원은 “DDT는 민물고기·야생조류 및 기타 야생생물에 심각한 유해작용을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더 어이없는 사실은 DDT가 금지된 이후 널리 사용된 다른 살충제들이야말로 DDT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해로웠다는 것이다.
결국 2000년대 들어 DDT는 다시금 사용이 재개됐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모기는 그동안 나름의 방어책을 마련한 뒤였다. DDT는 여전히 좋은 살충제였지만, DDT에 저항성을 보이는 모기들은 살아남아 말라리아를 전파했다. 환경을 보호하는 게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환경을 보호하는 것도 어차피 인간을 위해 하는 일, 인간의 생명을 희생시켜가며 하는 환경보호가 과연 옳은 것인지 생각해볼 일이다. 레이첼 카슨씨, 듣고 계십니까?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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