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의 의학이야기] 우리나라 물의 우수성

입력 : 2020-1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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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옛날, 우리 조상들은 우물에서 물을 길어 먹었다. 길 가는 남자가 물을 청할 때 나뭇잎을 띄워줌으로써 연애에 성공하는 등 나름의 낭만이 있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우물은 불편한 수단이었다. 물통을 가지고 우물에 가서 물을 가득 싣고 낑낑대며 집으로 가져가야 했으니까.

우리가 여전히 우물에 의존하던 1830년대, 영국 런던에선 템스강의 물을 끌어다 마을 곳곳에 설치된 펌프로 전달하는 시스템이 개발됐다. 그로부터 얼마 후, 무서운 질병이 런던을 강타했다. ‘콜레라’라는 이름이 붙은 그 질병에 걸린 사람은 구토에 이어 곧 설사를 하기 시작하는데, 그 설사가 어찌나 심한지 몸에 있는 수분이 다 빠져 목숨을 잃을 지경이었다.

1850년이 돼서야 원인이 물 때문이라는 게 드러났다. 당시 사람들이 쓰고 난 더러운 물이 배수시스템을 따라 템스강으로 흘러들어갔는데, 온갖 병균이 들어 있는 그 물이 펌프를 통해 다시 사람들에게 공급됐으니 환자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결국 쓰고 난 오물은 다른 곳으로 운반해 정수 처리를 하게 됐다. 이것이 상수도와 하수도가 분리된 시초였다. 이 시스템이 세계 각국으로 퍼지면서 최소한 좀 사는 나라들에서는 물을 통한 전염병의 위험성이 덜해졌다.

1993년, 미국 위스콘신주에 있는 밀워키에서 이상한 일이 생겼다. 큰 회사의 직원들이 배탈이 났다며 단체로 출근을 안한 것이다. 그 직원들이 단체로 회식했던 사이라면 원인을 밝히기 쉬웠을 텐데, 그들은 서로 모르는 사이였고 전날 만난 적도 없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런 일은 밀워키 곳곳에서 벌어졌다. 병원에서 이런저런 검사를 해봤지만 원인은 오리무중이었고, 설사 환자는 나날이 늘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설사 환자의 변을 검사하던 의사는 적혈구 크기보다 더 작은 무엇인가를 발견한다. “혹시 이게 설사의 원인이 아닐까?” 그 의사는 자신의 발견을 보건당국에 신고했고, 추가적인 조사 결과 그 작은 미생물이 이번 사태의 원인이라는 게 드러났다. 이 병원체는 와포자충(Cryptosporidium parvum)이란 기생충으로, 10여년 전 세살짜리 여자아이에게서 묽은 설사를 일으켰다는 보고가 있지만, 이렇게 단체로 사람들을 감염시킨 건 처음이었다.

문제는 그 균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전파됐는가였다. 동시다발적으로 많은 사람을 감염시켰다면 딱 한가지, 수돗물밖에 없었다. 수돗물 공급소 직원은 자신을 찾아온 보건당국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물탱크는 두개가 있어요. 근데 며칠 전부터 한곳의 물 색깔이 좀 이상했어요. 혼탁하다고 해야 할까? 그랬는데 이런 사태가 벌어졌군요.” 밀워키 시장은 그 물탱크의 폐쇄를 결정했고, 사람들에게 물을 끓여 먹을 것을 권했다. 결국 사태가 진정되긴 했지만 이 사태로 감염된 이는 40만명에 달했고, 목숨을 잃은 이도 104명이었다.

그 뒤 와포자충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가 이루어졌다. 와포자충은 동물에서도 설사를 일으키는데, 동물의 변이 어떤 이유로든 사람이 먹는 수돗물에 흘러들어가 이 사태가 발생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이전 다른 나라에서 발생한 정체불명의 집단 설사 사태 중 상당수가 와포자충 때문이라는 게 드러났다.

국내에서도 이에 대한 조사가 시작됐다. 1996년 발표된 논문에 의하면 전라남도는 전체 주민의 10% 정도가 와포자충에 걸려 있었는데, 그들이 기르던 소의 대변에서 이 기생충이 다량 발견됐다. 이에 따라 소의 대변이 주민들이 먹는 식수로 흘러들어가 감염을 지속시키고 있다는 게 드러났다. 수돗물 관리센터는 와포자충을 정수 처리 항목에 넣고 지속적인 관리를 시작했고, 전남의 와포자충 감염률은 이제 0에 수렴할 정도가 됐다. 이건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는 와포자충 청정 지역으로 분류될 만큼 수돗물 관리를 잘하고 있다.

비교를 위해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보자. “2009년부터 9년간 미국에서는 총 444번의 와포자충 집단 발병이 생겨 7465명의 환자가 발생했다.” “같은 기간 영국에서도 연간 4000여명의 환자가 발생했다.” 가장 먼저 상하수도시설을 만든 영국에서도 이럴진대, 우리나라가 와포자충의 청정 지역이라니 놀랍지 않은가?

그래서 말씀드린다. 생수가 대세가 된 시대지만, 우리나라에선 정 급할 땐 수돗물을 마셔도 된다. 하지만 외국에 가서는 그러면 안된다. 그 안에 와포자충이 들어 있을지도 모르니까.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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