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의 의학이야기] 알프스산맥서 발견된 고대인이 앓던 병

입력 : 2020-09-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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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00년 된 ‘미라’ 몸 곳곳 문신 퇴행성 관절염 치료행위로 추정

현대에도 마땅한 치료법 없어 체중감량 등 통해 예방이 최선

수많은 실험실서 연구 진행중 인간의 능력 믿고 기다려볼 뿐

 

해발 3200m에 달하는 알프스산맥의 한 봉우리에서 시체 하나가 발견됐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최근에 실종된 사람’으로 생각해 수사에 나섰지만, 그가 가지고 있던 물건들이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석기시대에나 볼 수 있는 것들이었다. 알고보니 그는 5300년 전에 살던 인물로, 먹을 것을 놓고 다른 이들과 다투다 둔기에 머리를 맞고 숨진 비운의 고대인이었다. 그가 죽은 곳이 늘 눈이 쌓여 있을 만큼 추운 곳이어서 시체가 썩지 않았는데, 이런 것을 우리는 ‘미라’라고 부른다.

발견된 장소가 외치 계곡이어서 ‘외치’라는 이름이 붙은 이 미라에는 특이한 점이 하나 있었다. 몸 곳곳에 검은색의 문신이 있었던 것. 뾰족한 침으로 피부에 상처를 낸 뒤 자작나무를 태운 재를 넣어 만든 이 문신은 외치가 살아생전 아팠을 부위와 정확히 일치했다. 예컨대 외치는 오른쪽 무릎에 심한 퇴행성 관절염(이하 골관절염)을 앓고 있었는데, 그 부위에는 십자 모양의 문신이 있었다. 그러니까 외치의 몸에 있는 문신들은 통증을 없애기 위한 당시의 치료 행위였다. 자작나무의 재를 몸에 바른다고 통증이 얼마나 줄어들었을까마는 그 시절 의료 수준은 이렇듯 한심했다.

외치가 앓았던 골관절염은 뼈와 뼈가 만나는 부위에 있는 연골이 어떤 원인으로 손상되는 것을 말한다. 움직일 때 가해지는 충격을 연골이 흡수해줘야 하건만, 그게 없으니 움직일 때마다 뼈끼리 부딪쳐 통증이 느껴지고, 운동 반경이 제한되며, 염증 탓에 무릎이 붓고 물이 차기도 한다. 특히 계단을 오르내릴 때 통증이 심해지는데 이 병으로 오래 고생하시는 어머니는 지하철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힘들어하시곤 한다.

이 병의 원인은 다음과 같다. 첫째, 무릎이 감당하는 무게가 증가할수록 골관절염에 걸리기 쉬워진다. 뚱뚱한 사람은 그래서 골관절염이 많다. 둘째, 육체노동 등으로 무릎을 많이 쓰는 사람이 더 잘 걸린다. 셋째, 타박상을 입는다든지 하는 식으로 무릎에 상처가 난다면 골관절염을 앓기 쉽다. 앞서 소개한 외치는 몸 여기저기에 타박상의 흔적이 있었는데 그 와중에 오른쪽 무릎도 다쳤을 것이다. 그밖에 유전적 요인도 조금은 관여하고, 남성보다는 여성이 더 걸리기 쉽단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나이’로, 통계에 따르면 45세가 넘으면 골관절염이 생길 확률이 가파르게 올라간다고 한다.

원인을 알고 나니 암담해진다. 살을 빼는 건 어렵고, 무릎을 안 쓰고 살 수도 없다. 게다가 나이 드는 것을 무슨 수로 막는단 말인가? 더 암담한 것은 골관절염에 마땅한 치료법이 없다는 점이다. 골관절염은 연골이 손상되는 질환이다. 지금의 의학기술로도 연골을 재생시키는 방법은 없다. 한때 글루코사민이라는 약이 화제를 일으킨 적이 있었다. 미국에 갔다가 오는 우리나라 관광객이 경쟁적으로 이 약을 샀는데, 그건 글루코사민이 통증을 줄여주는 것은 물론 연골도 재생시켜준다는 광고 때문이었다. 하지만 연골 재생 부분은 근거가 전혀 없었으며, 통증을 줄여주는 것도 임상시험 결과 별 효과가 없었다. 글루코사민이 미국 식약처 (FDA)의 승인을 얻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요즘 여러 병원에서 홍보하는 줄기세포 치료는 어떨까? 이름만 들으면 연골이 마구 재생될 것 같지만, 이것 역시 아직 그 효과를 인정받은 적이 없다. 유전자(DNA) 주사도 크게 다르지 않은데, 이런 치료법들이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도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효과를 인정받은 치료법은 타이레놀 같은 소염진통제로 통증을 줄여주는 게 고작이다. 무릎의 관절을 인공으로 갈아주는 치료법도 있긴 하지만 이 수술을 받은 환자들의 평가가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치료법이 없으니 남는 것은 예방뿐이다. 살을 미리 빼고, 되도록 다치지 말기, 적당한 운동으로 근육을 만들어줌으로써 무릎뼈의 마찰을 막는 것 등이 고작인데 이것 역시 말이 쉽지 실천하긴 어렵다.

적어놓고보니 암담해진다. 돌도끼를 쓰던 5300년 전의 인간과 첨단 과학이 지배하는 21세기 인간이 골관절염에 대해 똑같이 무기력하니 말이다. 이럴 거면 외치처럼 자작나무 재로 문신이나 새겨볼까 하는 생각도 든다. 다만 그때와 다른 건 수많은 실험실에서 여기에 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 그러니 인간의 능력을 믿고 조금만 기다리자. 골관절염이 추억의 질병이 될 그날을.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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