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인간이 품앗이하는 계절
먹고 입는 민생의 알짬 몰려 있어
김득신 ‘사계풍속도’ 중 ‘벼 타작’
알곡 털어내는 농군에 시선쏠려
조연 더 많이 등장 ‘볼거리’ 가득
내남없이 풍성한 가을 아닌가…

가을 물은 티 없이 맑고, 가을 달은 오지게 밝다. 가을의 끝판인 가을걷이는 어떤가. 삼복의 염천 아래 여문 열매는 선들바람에 달막거리고, 거두는 자의 기쁨은 옹근 이삭처럼 부푼다. 결실이 자연의 힘이라면 수확은 사람 몫이다. 하여 가을은 자연과 인간이 품앗이하는 계절이랬다. 품앗이는 남녀도 나눈다. 농사는 농군에게 묻고 길쌈은 아낙에게 물어야 했다. 요컨대, 먹고 입는 민생의 알짬이 가을에 몰렸다.
가을 풍경은 옛 그림에도 오롯한데, 흥겹기로 치자면 타작하는 그림이 가장 윗길이다. 김득신이 그린 <사계풍속도>는 철마다 다른 민촌의 풍습이 담긴 여덟 폭짜리 병풍이다. 그중에서 오늘 볼 그림이 <벼 타작>이다. 벼가 무르익은 황금 들녘은 저편 너머로 물러나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알곡을 털어내는 농군의 일머리에 시선이 붙들린다.
그림 아랫도리를 먼저 보자. 여섯 일꾼이 저마다 다른 포즈로 등장한다. 그나마 열중한 표정은 똑같은데, 능숙한 일의 가락이 몸짓에 뱄다. 볏단을 막 내리칠 기세인 맨살의 사내들은 두 팔을 마주 치켜들었다. 그들 곁에 다른 둘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묶인 이삭을 개상에 내리친다. ‘개상’은 통나무를 덧대어 만든 탈곡기 구실을 하는 농기구다. 그 아래 삿갓 쓰고 곰방대를 허리춤에 꽂은 사내는 비질한다. 낟알 하나 놓칠세라 몸놀림이 신중하다.
<벼 타작>에서 농경사회의 일상은 궁티를 벗고 활기차다. 김득신은 김홍도·신윤복과 함께 조선의 3대 풍속화가로 불리며 넉살 좋은 솜씨를 자랑한 재주꾼이다. 그는 김홍도 그림을 자주 흉내냈다. 이 그림도 김홍도의 <행려풍속도병풍>에서 본을 땄다. 둔덕 위 갓쟁이는 남바위 차림에 장죽을 배슥하게 꼬나물었는데, 이게 김홍도 그림과 닮은꼴이다. 어깨를 편 품세가 위엄을 슬며시 전하는데, 그의 신분이 궁금해진다.
감농(監農) 역할을 한 마름이 아닐까. 지주의 심부름을 도맡으면서 소작료를 징수하거나 소출을 배당하는 일이 그의 임무다. 아무래도 농군에게 강짜를 놓을 여지가 다분한 인물이다. 이 대목에서 화가는 너그럽다. 맨 윗자리에 배치했으되 신분을 떠받들려는 의도는 아니다. 속으로야 어림셈하며 반(半)타작을 따지는지 알 수 없어도, 술병에 담긴 막걸리는 나눠 마실 씀씀이가 그에게서 엿보인다.
김홍도 작품과 다른 게 있다. 조연이 더 많이 등장해 볼거리가 풍성하다. 수확의 기쁨은 바랑을 메고 지나가던 탁발승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고, 떨어진 낟알을 쪼아 먹는 닭들과 뛰쳐나온 검둥개에게도 고루 미친다. 왼쪽 위, 논둑 밭둑을 느릿하게 지나온 소는 길마에 볏짐을 가든하게 싣고 나타난다. 탈곡에 신나는 농군들에게 일감을 부려주고 나면 이미 여러 차례 다녀온 길을 다시 되짚어가야 할 처지다. 어느 시인이 시골길을 걸으며 읊조렸다. ‘논둑길에 익어가는 벼이삭은 누가 주인인가 / 고추잠자리와 버마재비가 더불어 즐기네.’ 수확 앞둔 논밭이 가을벌레의 놀이터란다. 내남없이 풍성한 가을 아닌가.
손철주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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