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철주의 옛 그림 이야기] 애타게 울부짖고 허망하게 떠나다

입력 : 2021-06-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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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정의 ‘버들 매미(18세기, 종이 담채, 28.0×22.2㎝,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일주일 맹렬히 울다 가는 매미 오랜시간 땅속서 애벌레로 버텨

골방에서 수련하는 선비 비유 ‘문·청·염·검·신’ 다섯 덕목 갖춰

심사정 작품 ‘버들 매미’ 속뜻도 군신이 꼭 ‘五德’ 지키라는 의미

 

철마다 메신저가 있다. 봄 제비, 여름 매미, 가을 귀뚜라미가 울며 불며 철모르는 사람을 철들게 했다. 물쿠는 더위를 매미 소리가 식혀주던 시절에는 ‘매암이 맵다 울고 쓰르람이 쓰다 운다’는 노랫가락이 정겨웠다. 요새 매미 소리는 넌더리 난다. 소음 없던 시절의 낭만이 된 지 오래다.

최근 외신은 끔찍한 소식을 퍼뜨렸다. 17년간 땅속에 웅크렸던 매미 유충 수십억마리가 한꺼번에 올라와 올해 미국 동부 하늘을 덮는단다. 제트기 소리보다 더 크게 우짖는 매미떼는 호러 영화에 나올 법하다.

옛 그림에는 매미가 자주 나온다. 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은 외가닥 소나무에 앉아 투명한 날개를 뽐내는 매미를 그렸다. 월봉 김인관이 그린 매미는 옹이가 굵게 파인 버드나무 한쪽 살랑거리는 가지에서 줄타기하는 모습이다. 임전 조정규는 고목에서 꼼짝달싹하지 않는 매미를 묘사했다.

문인화가인 현재 심사정이 그린 ‘버들 매미’는 어떤가. 버들 줄기가 툭 부러져도 물오른 연둣빛 잎들은 마냥 싱그럽다. 더듬이와 앞발을 애써 그린 화가의 붓질이 꼼꼼하고, 화면을 가르는 줄기와 가지의 포치는 시원할 만큼 활달하다.

날벌레인 매미가 무엇이 잘나 조선시대 화가의 단골 소재가 되었을까. 여러 까닭이 있다. 매미의 한살이가 간단치 않다. 일주일 남짓 맹렬히 울다 목숨이 다하지만 애벌레 시절은 알고 보면 눈물겹다. 앞서 뉴스에서 전했듯이 17년 세월을 캄캄한 땅 밑에서 나무에 오르기를 기다리며 앙버틴 종이 엄연하다. 은근히 견주어 보게 된다. 출세를 각오하고 어둑한 골방에서 수련하는 선비와 다를 바 없다.

웅숭깊은 비유는 문헌에도 나온다. <주역>에서 말하길 ‘군자는 표범이 털갈이하듯 개혁하라’고 일갈했다. 성악설을 주창한 순자는 도리어 매미를 거든다. ‘군자의 자기개혁은 매미가 허물 벗듯이 한다’며 유별나게 지적했다.

그뿐 아니다. 진나라 문인 육운도 매미의 처신을 높이 사는 글을 남겼다. 그는 매미의 생태를 관찰해 뛰어난 덕을 찾아냈다. ‘문(文)·청(淸)·염(廉)·검(儉)·신(信)’ 이것이 매미의 ‘부캐(부캐릭터)’로 굳어버린 오덕(五德)이다.

이쯤 떠받들면 알 테다. 군신이 지켜야 할 덕목을 고루 갖춘 존재가 바로 매미 아닌가.

마땅하게도 매미 날개가 벼슬아치의 모자에 붙었다. 펼친 날개가 문무백관이 쓰는 오사모에 보이고, 날아가는 날개 모양은 임금의 익선관에 본떴다. 매미 날개는 유리알처럼 깨끗하다. 관리의 겉과 속은 무릇 맑아야 한다.

심사정의 매미가 구태여 버드나무에 날아간 속뜻은 또 무얼까. ‘버들 류(柳)’자는 ‘머물 유(留)’자와 발음이 닮았다. 벼슬자리에 머무르는 동안 오덕을 꼭 지키라는 주문일 성싶다.

밤낮없이 아파트 방충망에 매달린 매미가 악악댄다. 급변하는 생태계와 날뛰는 기후 탓이다. 자지러지는 수컷의 울음은 사실 애타는 소리다. 크면 클수록 짝짓기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런 여름 매미도 사라질 때는 어떤가. 지상에서 족보를 파내듯 가뭇없다. 하소가 극렬할수록 허망은 한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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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철주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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