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시대 초상화 특이점은 얼굴을 통해 내면의 정신 표현
판서 벼슬까지 지낸 윤동섬 필력 뛰어난 서예가이지만
초상화 속 겸손하게 자기 반성
조선시대 초상화는 차고 넘친다. 어진은 대대로 그려졌고, 공이 큰 신하는 때맞춰서 초상을 하사받았다. 사당에 모신 조상과 서원이 기리는 학자, 그들의 초상화수도 만만찮다.
하지만 우리 초상화는 서양화에 견주어 볼품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색은 칠한 둥 만 둥 하고 작은 종이나 천에 그려져 압도하는 위용이 모자란다는 푸념이다. 전통 초상화의 비교우위는 정작 다른 데 있다.
흔히 ‘이형사신(以形寫神)’으로 일컫는다. 우리 초상화가 지닌 특이점은 ‘얼굴을 통해 정신을 그리는’ 기술적 진보에 있었다. 곧 ‘전신(傳神)’이 알짬인데, 정신을 오롯이 전달하는 붓질은 초상화가의 ‘비기’였다. 조선의 초상화는 형용과 모색만 살핀 게 아니다. 인정과 기미까지 터득했다. 오죽하면 초상화의 옛말이 ‘참됨을 그린다’는 뜻의 ‘사진(寫眞)’이겠는가.
이 모델은 패션부터 눈길을 뺏는다. 등뼈를 꼿꼿이 세우고 한곳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품새가 엄숙단정하다. ‘블랙 앤드 화이트’ 복색은 절제된 단순미로 멋을 풍긴다. 이 옷이 ‘심의(深衣)’다. 사대부와 유학자의 평상복인 심의는 위와 아랫도리가 붙은 홑겹의 겉옷이다. 검정 헝겊을 깃과 소맷부리, 옷단에 덧댄 조촐한 꾸밈새가 머리에 쓴 복건과 한결 어울린다. 그뿐인가. 가선을 두른 허리띠에 오색실로 짠 술띠를 리본처럼 드리운 저 새뜻한 감각을 보라. 한복을 빼입은 방탄소년단(BTS)의 넘치는 스웨그(다른 사람과 달리 자신만이 낼 수 있는 특정한 멋이나 분위기)가 우연히 나온 게 아닐 테다.
초상화의 주인공인 이분은 뉘신가. 정조시대 이조·공조·형조에서 판서 벼슬을 두루 지낸 윤동섬이다. 필력이 뛰어난 서예가인 그는 여든 넘은 나이에 궁중의 문서를 도맡아 썼다. 오래된 비석 글씨를 첩으로 만들거나 골동과 서화를 아낀 문인답게 목리문 선연한 서안에 놓인 비품 또한 빼어나다.
나뭇잎 모양의 굽다리를 가진 황금빛 향로는 호사롭고, 산수 문양 사각 필통에 담긴 붓 갖춤은 여섯 자루나 된다. 치레가 말쑥한 벼루도 예사롭지 않다. 갈무리 잘한 조선시대 사대부의 취향과 안목이 눈앞에 버젓하다.
겉모습에 잘 드러나지 않는 게 속마음이다. 이 초상화는 자백의 형식을 빌렸다. 윤동섬의 호가 ‘팔무당(八無堂)’이다. ‘여덟가지가 없다’는 얘긴데, 그림 속 글에서 그는 비로소 내심을 털어놓는다.
‘재주가 없고 덕이 없으니 어찌 높은 벼슬을 할까. 뜻과 생각이 없으니 삶을 어이 이어갈까. 겨루는 마음이 없어 기가 강하지 못한 것 아닌가. 가슴속에 쟁여둔 것이 없어 즐김을 잊었는가. 성인을 배웠으되 얻은 게 없으니 역부족인가. 세상에 무익하니 그저 산속에 묻히는 게 맞지 않는가.’
윤동섬은 아둔패기인가. 곧이곧대로 들어선 안된다. 한탄조의 어투로 짐작건대, 호된 반성에 가까운 고백이다. 한눈에 척 봐도 강골 아닌가. 얼굴이 굳건한 마름모꼴이다. 치켜 올라간 눈썹에 광대뼈는 높고 하관이 빨아 괄괄해 보인다. 하여도 허세와 거리 멀다. 오로지 겸양으로 일관한다. 쥐뿔도 없이 플렉스(자기 과시) 인증에 바쁜 윤똑똑이들은 슬며시 부끄럽다.
손철주 (미술평론가)
ⓒ 농민신문 & nongmi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게시판 관리기준?
- 비방, 욕설, 광고글이나 허위 또는 저속한 내용 등은 사전 통보 없이 삭제되거나 댓글 작성이 금지될 수 있습니다.
- 농민신문
- 페이스북
- 네이버블로그
-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