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철주의 옛 그림 이야기] 서리 맞은 단풍은 무엇을 닮았는가

입력 : 2020-10-16 00:00 수정 : 2020-11-26 10:24

조선시대 달천의 ‘풍림정거’ 당나라 시인 두목 ‘산행’서 영감

시동 둘을 대동하고 나온 사내 수레 멈추고 가을 단풍 숲 감상 

침엽수 사이로 도드라진 붉은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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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천의 ‘풍림정거(16∼17세기, 비단에 수묵담채, 85.5×45.5㎝, 개인 소장)’

옛 그림에 서린 가을의 낌새를 꼽아보자. 짐작건대 얼추 세가지다. 먼저, 부는 바람이 심상찮다. 단원 김홍도가 생애를 끝마무리하며 남긴 ‘추성부도(秋聲賦圖)’는 호젓한 그림인데, 산마루터기를 훑는 바람에서 쇳소리가 들린다. 다음으로, 크고 서늘한 달이다. 영조 대의 화원 김두량이 그린 ‘월야산수(月夜山水)’에서는 가난한 숲속의 보름달이 아렴풋하면서도 한가위를 품으려는 은총 같다. 나머지 하나가 뭘까. 울긋불긋한 단풍치레다. 가을맞이 소재로는 단풍이 단연 솔깃하다. 그려댄 화가가 여럿이고, 그리는 마음이 한결 들뜬다.

이른 조선 시기에 선보인 작품 한점이 있다. 단풍놀이치고는 풍광이 참으로 한갓지다. 얼굴선이 고운 사내가 시동 둘이 끌고 온 손수레에서 내려앉아 먼 데로 눈길을 돌린다. 뒤편 나무에 불그스름한 색이 한창 부풀어 보암직하건만 웬걸, 등진 채로 구름발치 쪽을 더듬는다. 그곳에 아슴아슴한 단풍이나마 또 숨겨져 있을까 괜스레 탐이 나서다. 높은 산 구름 아래 놀랍게도 인가 서너채가 설핏 보인다. 화가는 왼쪽 공간을 다 비운 뒤 한구석에 나무 다섯그루를 몰아넣었다. 기름하거나 짜름한 나무가 섞였는데, 키 큰 나무는 붉기는커녕 외려 늘 푸른 침엽수다. 푸름푸름한 가운데 붉음이 더욱 도드라져 보이는 셈법을 화가는 익히 아는 바다.

보는 눈이 재빠른 이라면 아마 눈치챘으리라. 가을 늦을 녘 숲속에 수레가 나오고 단풍 늘어선 산길이 펼쳐지면 이건 ‘캐보나 마나 자주감자’다. 뭔 말인고 하니, 조선에서 너도 알고 나도 아는 당나라 시인 두목의 ‘산행(山行)’이란 절창을 빼다 박은 그림이라는 거다. 다시 그림을 보면서 그림이 된 시를 읊어보자. ‘멀리 차가운 산 오르니 돌길은 비탈진데(遠上寒山石徑斜·원상한산석경사)/흰 구름 이는 곳에 사람 사는 집이 있네(白雲生處有人家·백운생처유인가)/수레 멈추고 늦은 단풍 숲을 즐기나니(停車坐愛楓林晩·정거좌애풍림만)/서리 맞은 잎이 봄날의 꽃보다 붉구려(霜葉紅於二月花·상엽홍어이월화)’

마지막 ‘서리 맞은 잎이 봄날의 꽃보다 붉다’는 구절이 얼마나 기막히는가. 색깔에 물든 시어가 이토록 선연하다니. 유사 이래 최고의 추색(秋色)으로 떠받들어도 허세가 아니다. 오죽하면 조선시대 ‘풍림정거(楓林停車)’라는 제목의 비슷한 그림들이 줄을 이었겠는가. 이인상과 정수영, 장승업과 안중식 등 한가닥 하는 화가들이 죄다 이 시를 그리기 위해 마음 도스르고 먹을 갈았다. 그들 중에서 오늘 본 이 화가는 시대가 가장 앞서는 인물이다. 그림 속에 서명처럼 쓴 ‘달천(達川)’은 호로 짐작될 뿐 이력은 안갯속이다. 오래전 일본 컬렉터(수집가)에게 넘어갔다가 되돌아온 지 10여년 된 희귀품이다.

온 산이 분단장에 바쁘다. 단풍이 달가운 시인은 입이 근질거린다. 산마다 붉으락푸르락한 표정에 놀란 서산대사는 ‘울어대는 새소리마저 시로구나’ 하며 반색했고, 술잔 들던 백거이는 ‘취한 얼굴이 서리 맞은 단풍/발그레하지만 청춘은 아니라네’ 하며 탄식했다. 가을이라 슬픈가, 올가을이라 슬픈가.
 

손철주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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