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보전·농가소득 향상 위해
영농형 태양광사업 활성화 필요
우리 헌법은 경자유전의 원칙을 명시하고 있지만 2015년 조사를 보면 전체 농지 가운데 농민이 소유한 농지 비율은 겨우 절반을 넘는다. 1949년 제정된 농지개혁법은 경자유전의 원칙을 토대로 봉건적 소작제도를 청산하고 자작농을 창출하는 데 의의를 뒀다. 그러나 산업구조의 변화, 저임금 수출경제를 떠받치기 위한 저곡가 정책 등으로 탈농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이렇듯 산업화시대를 거치며 비농민의 농지 소유는 합법과 불법 사이에서 확대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무분별한 농지전용이 이뤄지고 농지가 투기 대상으로 전락했다. 또한 높아진 농지 가격은 청년층의 영농 진입을 가로막고 있다.
농민들에게 농지는 농산물 생산을 위한 필수 요소지만 농산물 가격 결정에 농지 가격은 원가로 반영되지 않는다. 농업 생산만으로 안정적인 소득 확보가 어려운 영세농들이 투기 세력의 유혹을 쉽게 이겨내지 못하는 이유다. 게다가 자경농지 소유자의 고령화가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농민의 연령별 농지소유 현황을 보면 2018년 기준 60세 이상 농민이 전체의 81.3%를 소유하고 있다. 이 가운데 영농을 계승할 가구원이 있는 농가는 20% 정도에 불과하다. 길게 잡아도 20년 후엔 자경농지가 매매나 증여, 상속으로 비농민의 차지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변화된 산업구조와 인구학적 요인들로 경자유전의 원칙을 폐기하자는 압박은 거세질 전망이다. 그러나 비농민의 농지 소유를 확대하는 정책은 더 큰 재앙이 될 수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농지가 온전히 보전돼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웠다. 코로나19 발생 초기 각국 정부가 감염 확산 방지를 위해 이동을 제한하자 글로벌 공급체인망으로 유지되던 세계경제가 흔들리면서 일부 국가에선 식량부족 사태가 발생했다.
하지만 심각한 식량위기는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이 펼친 양적완화 정책은 곡물시장에 투기를 불러왔다. 그 결과 국제곡물가격이 급등하는 애그플레이션이 발생했고 이는 이집트를 비롯한 북아프리카의 정치 불안으로 이어졌다. 지금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미국·유럽 등 세계 모든 정부가 통화 공급량을 늘리고 있다. 10여년 전에 보았듯이 유동성 폭탄은 곡물가격의 폭등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다. 세계적인 식량위기가 닥쳤을 때 가장 약한 고리가 우리나라가 될 수도 있다. 농지가 보전돼야 국가의 미래가 담보된다.
농지를 보전하려면 이제 경자유전의 원칙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농지를 보전하는 동시에 농지를 통한 농가의 안정적인 소득 확보가 가능해야 한다. 지금까지 농정은 생태보전, 식량생산, 농가소득의 세가지 문제 중 하나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하나를 희생시키는 방향으로 이뤄졌다. 생산량을 높인다는 목적으로 화학비료와 농약을 투여해 생태계를 훼손하거나 생태계 보전을 위해 농지의 효율적 활용을 제한하면서 농가소득을 정체시켰다.
생태계 보전을 위해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에너지 공급체계를 바꾸면서도 농지를 훼손하지 않는 길을 찾아야 한다. 영농형 태양광사업을 한 방안으로 꼽을 수 있다. 안정적인 식량생산과 농가소득을 보장하면서 생태계 회복을 돕는 에너지 생산방식이어서다. 하지만 현재 법적 규제가 영농형 태양광의 활성화를 가로막고 있다. 과거에 만들어진 법이 미래의 발목을 잡는다면 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 생태위기, 식량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과감한 발상의 전환과 도전이 필요한 때다.
문병완 (농협RPC운영전국협의회장·전남 보성농협 조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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