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포럼] 한산도의 눈물

입력 : 2020-1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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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임진왜란의 승패를 바꾼 한산대첩의 승지, 한산도에서 태어나 살고 있는 것이 자랑스럽다. 다만 안타까움이 있다면 50년 동안 한려해상국립공원으로 묶여 심한 제재 속에서 기울어져가는 고향을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 무력함이다.

한 예로, 이곳에선 매년 2월말 옥수수 씨앗을 심어 6월말께 수확한다. 그런데 옥수수를 따기 2주 전에 농부보다 야생멧돼지가 먼저 알고 찾아와 밭을 엉망으로 만들기 일쑤다. 수확의 기쁨을 기대했던 농민들은 야생멧돼지로 인해 한해 농사를 망치고 실의에 빠진다. 이런 아픔을 덜어주고자 5년 전부터 야생멧돼지 개체수를 줄여달라고 한산면사무소와 국립공원공단한려해상동부사무소 한산분소에 숱하게 애원했지만 공허한 메아리에 그쳤다.

그뿐인가. 봄철에 한산도를 방문한 관광객이 쑥이라도 조금 캐면 국립공원공단에선 “벌금을 물리겠다”고 한다. 또 10년을 외지에서 살다가 농사짓기 위해 농지를 구입한 농민이 밭에 자라난 나무를 베려 하면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으름장이다. 면사무소에서는 “신고기간 내에 농사짓는 것이 확인돼야 농지취득자격증명서와 농지원부를 발급할 수 있다”고 한다.

통영시에서 한산도에 뭐라도 하나 해주고 싶어도 국립공원공단의 허락을 받지 못해 허사로 돌아가는 일이 수두룩하다. 그 시간이 어느덧 50년을 넘어 급기야 침체와 지방소멸을 걱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환경부가 제3차 한려해상국립공원 구역 조정안을 내놨다. 이는 자연공원법에 따라 10년마다 공원구역과 공원 내 용도지구를 다시 조정하는 절차다. 그런데 한려해상국립공원 구역 조정안에는 해제된 구역보다 새로 편입된 지역이 훨씬 많다. 섬 전체가 국립공원 구역인 한산도는 어떻겠는가. 그동안 집도 마음대로 못 고치는 등 각종 규제에 시달려온 주민들은 이번 조정 때 최소한 마을과 논밭만이라도 해제되기를 기대했는데 또 물거품이 됐다. 반발이 거센 것은 당연지사다.

구역 조정을 10년에 한번 하는데, 2021년 2월까지는 얼마 남지도 않았다. 물리적인 시간이 촉박한데, 환경부는 코너에 몰아넣고 총량제 범위 내에서 답을 찾으라는 식이다.

10년 후, 2031년 2월의 한산도는 어떤 모습일까? 얼마만큼의 발전이 제재 속에서 미뤄지고, 과연 몇명이나 살고 있을까. 사람은 안 들어오고 고령화는 심화되니 생산 작물도 별로 없을 게 뻔한데 한산농협은 그때까지 유지되고 있을까.

후손들이 “그때 당신들은 한산도를 위해 무엇을 했느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하지…. 나는 가끔 충무공 이순신이라면 이 난제를 어떻게 극복할까 자문해본다.

최재형 (경남 통영 한산농협 조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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