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포럼] 경자유전 원칙의 재정립 방향

입력 : 2020-04-24 00:00 수정 : 2020-04-25 23:47

농지의 공공성·공익성 제고 위해 공개념 도입하고 직불제 확충해야
 


대한민국 헌법 제121조는 ‘국가는 농지에 관해 경자유전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경자유전(耕者有田)은 농사짓는 사람이 농지를 소유한다는 뜻이다. 1950년 농지개혁 이후 농정제도의 근간으로 삼아 1987년 개정된 현행 헌법에 명시됐다.

경자유전 원칙은 농지 소유자와 경작자의 일치로 농지의 생산성을 극대화하고 경작을 통한 수익이 농민에게 귀속돼야 한다는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제도다. 헌법에서 ‘원칙(原則)’이라고 규정했으니 하위법령에선 당연히 일관되게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규칙이 돼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농지를 지켜야 할 ‘농지법’은 예외 규정을 통해 비농민의 농지 소유를 광범위하게 인정하고, 농지법 이외의 다른 법률에선 농지전용이 무분별하게 허용되는 실정이다. 농지법 제정 직전인 1994년에는 7개 법률에서만 농지전용이 용인될 정도로 관리가 엄격했으나, 2019년 6월 기준 농지전용 의제 법률은 78개로 크게 증가했다.

결과적으로 농지의 소유와 이용 현황이 문제의 심각성을 말해준다. 통계청의 농업총조사에 따르면 전체 농지 중 농민(농업법인 포함)이 소유한 농지 비율은 2015년 기준 56.2%에 불과하다. 농가경제조사에 의하면 2017년 기준 농지임대차 비율은 51%에 달하며, 임대농지의 44%는 비농민 소유다.

통계 수치를 따져보면 이른바 부재지주로서 농민에게 농작업을 맡기는 위탁영농이나 통작영농이 보편화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농지법이 존재하기 때문에 비농민도 농지 소유가 가능하고 임대도 할 수 있는 아이러니한 세상이 됐다. 이렇게 경자유전의 실효성 문제가 제기되면서 2017년 2월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에서도 경자유전 원칙의 삭제를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농촌 현장에선 농민들조차 경자유전의 원칙을 불편해한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이농하더라도 농지를 처분하지 않고 가산(家産)으로 계속 보유하려는 경향이 강한 데다 농민의 상속자들이 농사를 짓지 않는 경우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일부는 농지 소재지와 가까운 중소도시에 거주하면서 농민 대우를 받으려는 반도반농(半都半農)들이다.

그나마 농민들은 경자유전 원칙에 호의적인 반응이 많은 것으로 나타나 조금은 희망적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해 농민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717명 가운데 약 57%가 ‘경자유전 원칙이 실효성 없거나 유명무실하다’고 지적했다. 또 약 58%가 ‘경자유전 원칙이 계속 지켜져야 한다’고 답했다. 동일한 질문에 대한 응답이 2008년 26.4%에서 2배 이상 높아진 것을 보면 이러한 농심이 경자유전을 지탱해온 것으로 이해된다.

이제 경자유전 원칙의 회복을 위해 범국민적으로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부재지주가 늘어나 경자유전에 실효성이 없다는 이유로 헌법 규정을 삭제할 것이 아니라 농업 발전을 위한 현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기본 방향은 ‘농지공개념’을 도입해 농지의 공공성과 공익성을 높일 수 있도록 농지제도를 재정립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국토이용계획과 연계해 우량농지 보전제도를 강화해야 한다. 농민의 영농규모 확대와 경영안정에 기여하도록 농지임대차 제도 역시 정비할 필요가 있다. 농지의 투기적 소유를 근절하기 위한 관련 세제·부담금 제도 개편, 농지의 공익적 기능을 지원하는 직불제의 확충 등도 당면한 정책과제다.

농지공개념 시책을 가시화하기 위한 입법조치가 시급하다. 5월말 개원하는 21대 국회에선 경자유전 원칙이란 도그마에서 벗어나 농업·농촌 발전을 위한 농지법제가 논의되길 기대한다.

김정호 (환경농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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