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 六道’ 근간의 원리는
우선순위 제대로 아는 것
똑똑한 자 ‘시급한 일’ 파악
인자한 자 ‘필요 인재’ 발탁
정치는 급한일 먼저 처리
국민 안전·행복 가장 중요
겨울로 들어서는 길목, 시골마을 동네마다 김장으로 분주하다. 도시에 나갔던 자녀들이 주말에 틈을 내서 내려와 배추를 나르고, 아낙들은 절인 배추에 양념을 바르고, 남성들은 배추가 차곡차곡 담긴 김치통을 식구 숫자에 따라 몫을 나눠 옮긴다. 갓 버무린 배추에 삶은 돼지고기를 싸서 서로 입에 넣어주는 것은 김장축제의 하이라이트다.
김장은 단순히 겨울에 먹을 밑반찬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겨울맞이 축제다. 마을사람들과 가족들이 모이는 이유가 되기도 하고, 서로의 인연을 확인하는 만남이 되기도 한다. 슈퍼에 가면 언제든지 김치를 살 수 있고 필요할 때 주문하면 하루 만에 문 앞에 도착하는 시대가 됐어도 김장은 김치 이상 그 무엇의 의미가 있다.
누군가 묻는다. “김장을 하는 데도 도(道)가 있습니까?” 내가 답한다. “세상만사 도가 깃들지 않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배추를 심어서 겨울 김장을 준비하는 일을 지혜(智)라 하고, 소금물에 배추를 적절하게 절여 기본 간을 맞추는 것은 마땅함(義)이라 한다. 적당히 양념을 버무려 절인 배추와 만나게 하는 과정을 합(合)이라 하고, 사람들이 서로 모여 힘을 합쳐 김장하는 것을 동(同)이라 한다. 갓 버무린 배추에 삶은 돼지고기를 싸서 서로 입에 넣어주는 애정을 정(情)이라 하고, 김치통에 김치를 담아 서로 양보하며 나누는 마음을 사랑(仁)이라 한다. 김장의 도는 이 여섯가지를 벗어남이 없으니 김장 육도(六道)라 한다.”
그러나 어찌 김장의 도가 이 여섯가지뿐이겠는가? 가장 중요한 근간이 되는 원리는 급선무의 도리다. 무엇을 먼저 하고 무엇을 나중에 하느냐의 우선순위 원리를 모른다면 진정 김장의 도를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김장에도 선후가 있고 시종이 있고 본말이 있다. 무엇이 제일 급하고 먼저 해야 하는 것인지를 안다면 진정 김장의 도를 제대로 안다고 할 것이다. 배추와 양념거리를 심어 정성스럽게 가꾸는 일이 먼저 할 일이며, 김장하여 김치를 나누는 일은 나중에 할 일이다. 김장을 통해 우애와 사랑을 나누는 마음이 먼저 할 일이며, 김치를 많이 만들어 쌓아놓는 일은 나중에 할 일이다. 사람이 선후를 모르고 본말을 혼동하면 아무리 학식이 깊고 높은 자리에 있더라도 무지(無知)하고 무도(無道)한 사람이라 할 것이다.
급선무(急先務)는 무엇이 급(急)하게 먼저(先) 힘써야(務) 할 일인지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뜻으로, <맹자(孟子)>에 나오는 말이다. 세상에는 해야 할 일이 많지만 우선순위가 있다. ‘똑똑한 지도자는 시급히 먼저 알아야 할 일이 있고, 인자한 지도자는 시급히 먼저 발탁해야 할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을 급선무를 아는 지도자라 한다.’ 지도자가 시급히 알아야 할 일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쓸데없는 일에 매달려 본질을 잊고 있거나, 시급하게 필요한 사람을 제대로 발탁하지 못하고 능력 없는 사람을 자리에 앉혀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면 어리석은 지도자라는 것이다.
정치는 급선무를 실천하는 일이다. 국민의 안전과 행복이 급선무지, 선거 때 표나 자리를 보존하는 일이 급선무가 아니다. 국민의 고충을 제대로 알고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지, 서로 헐뜯고 정쟁을 일삼는 것이 급선무가 아니다.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무엇이 먼저고 무엇이 나중인지 급선무를 알지 못하고 그 자리를 끝까지 보존하는 자는 예부터 그리 많지 않았음을 알아야 한다.

박재희 (석천학당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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