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산목’ 편 우화에서
매미든, 사마귀든, 까치든
자신이 승리자인 듯 착각
세상 영원한 승자는 없어
잠깐 방심하면 ‘망신’길로
가을비가 내리자 갑자기 다른 세상이 됐다. 기온은 내려가고, 밤은 길어지고, 학당 뒷산의 밤이 덩달아 떨어진다. 바람에, 가을비에, 새소리에, 숙성된 시간에 놀란 밤송이가 떨어져 산기슭을 뒹굴며 굴러 내려와 밤알을 토해낸다.
밤을 주워 소금물에 담가놨다가 벌레를 내보낸 후 가을볕에 말리며 한가롭게 <장자>를 읽는다.
세상에 완벽하게 승리하고 성공한 사람이 있을까? 누가 봐도 성공한 사람인데, 그 성공 뒤에 함께 따라오는 실패의 그림자를 못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장자가 밤나무 숲에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산목(山木)> 편을 펼친다.
장자가 울창한 숲으로 여행을 갔다. 어디선가 날개가 넓고 눈이 큰 까치 한마리가 날아와 밤나무에 앉았다. 장자는 돌을 들어 새를 잡으려 했다. 장자가 까치를 향해 돌을 던지려는 순간 까치는 자기가 위험에 빠진 것도 모르고 나무에 있는 사마귀 한마리를 잡아먹으려고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런데 사마귀는 까치가 자기를 잡아먹으려 한다는 사실을 모른 채 매미를 향해 두 팔을 쳐들어 잡으려 하고 있었다. 매미는 그것도 모르고 그늘에서 자신이 승리자인 양 모든 위험을 잊고 노래하고 있었다.
장자는 순간 세상 그 누구도 진정한 승자가 없음을 깨닫고 던지려던 돌을 내려놨다. 그때 밤나무 숲을 지키는 산지기가 쫓아와 장자가 밤을 훔치는 줄 알고 그에게 욕을 퍼부으며 막대기를 흔들어댔다. 장자 역시 최후 승자는 아니었다.
장자가 밤나무 숲에서 깨달은 것은 망신(忘身)이다. 망신은 자신(身)이 곧 잡아먹히리라는 사실도 모르고(忘) 눈앞의 승리에 취해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서로 먹히고 물려 있으면서 자신이 영원한 승리자인 듯 착각한다.
지금 나의 승리 뒤에서 또 다른 승자가 내 자리를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망신의 축배를 든다. 내 이익과 생존을 위해서 상대방을 누르고 이겨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자신 또한 누군가의 제물이 될 것이란 사실은 모르고 살고 있다.
장자 우화에 나오는 매미든, 사마귀든, 까치든, 장자든 각자 처지에서 자신이 승리의 주역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승리를 확신하고 승리에 도취해 있는 순간 뒤에서 그 승리를 뺏으려고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모른 채 말이다.
장자의 우화를 읽으니 <손자병법>의 ‘전승불복(戰勝不復)’이라는 구절이 떠오른다. 전쟁(戰)에서 승리(勝)는 반복되지(復) 않는다(不)는 뜻이다. 지금 얻은 승리가 영원하지 않으니, 승리한 순간 바로 승리를 잊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쟁터에서 상대방과 싸워 이기는 일이 기쁘기는 하지만, 나 역시 누군가의 승리를 위해 희생돼야 한다는 사실은 슬픈 일이다.
세상에는 지금 승리가 영원하다고 착각하여 승자의 저주를 받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내 앞의 승리만을 볼 줄 알았지, 내 뒤에 다가오는 불운의 그림자는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평생 망신하지 않고 살아가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잠깐 방심(放心)하면 어느덧 망신의 길로 들어서기 때문이다.
장자가 밤나무 숲에서 얻은 깨달음에 감탄하고 있을 때 갑자기 내린 소낙비에 학당 마당에 널어놓은 밤이 홀딱 젖은 줄 알지 못했으니, 나도 오늘 망신의 길로 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박재희 (석천학당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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