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는 일 잘하는 ‘졸’
작물에 생명주는 ‘신’
쓰임 있는 농기구들
철에 맞게 골라써야
흙·농작물·농부 잇는
‘징검다리’ 역할 톡톡
초여름에 심었던 상추와 배추와 옥수수 수확을 마쳤다. 가을 농사를 위해 텃밭부터 정돈했다. 예초기로 옥수숫대와 풀들을 잘랐고, 폭이 좁은 곳엔 날이 얇은 풀낫을 썼다. 갈퀴로 풀을 긁어모은 후 퇴비를 만들기 위해 비워둔 자리로 옮겼다. 곧 내 키만큼 쌓였다.
소형 관리기로 밭을 간 다음 골라잡은 농기구는 쇠발고무래였다. 이랑을 쓸며 잡풀과 잔돌을 걷어내고 흙을 골랐다. 이제 호미를 쥘 때가 왔다. 시금치 씨앗은 보름 후 뿌리기로 하고, 봄동배추와 당근 모종을 두이랑씩만 우선 심기로 한 것이다. 앉아서 팔만 놀려도 호미로는 못할 일이 없다. 흙을 파고 펴고 북돋고 덮는다. 농부에게 호미는 일 잘하는 졸(卒)이요 농작물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신(神)이다.
모종을 심고 나서 농기구들을 씻고 챙기다가 옛 농부들이 아낀 농기구들이 궁금해졌다.
조선 후기 실학자 서유구가 지은 <임원경제지> 중 <본리지>에 모아놓은 농기구들을 찾아 읽었다. 그림까지 곁들여 이해하기 쉬웠다. 우리나라 호미와 중국 호미를 비교해놓은 대목부터 눈에 들어왔다. 중국 농부들은 서서 김을 매기 때문에 호미 자루가 길고, 우리는 앉아서 김을 매기 때문에 호미 자루가 짧았다.
밭을 다지는 기구인 끙게도 흥미로웠다. 나뭇가지를 떨기처럼 끈으로 묶어 넓게 펴곤 그 위를 흙으로 눌러 끌면서 땅을 다졌다는 것이다. 특히 봄에는 끙게로 밭을 다져 뿌리가 들뜨는 것을 막아야 했다. 논을 평평하게 고르는 기구로는 번지가 있었다. 사람이나 소가 매끄러운 목판을 끌어, 갈아놓은 논의 흙덩이를 부수고 골랐다. 그래야 모를 똑같은 높이로 심을 수 있는 것이다. 괴석매라는 맷돌도 있었다. 현무암처럼 오돌토돌한 괴석으로 만든 맷돌로, 이 돌을 쓰면 갈린 곡식이 지나가는 홈을 힘들여 따로 팔 필요가 없었다. 소나 말로 대표되는 가축이나 물이나 바람을 이용한 농기구들 역시 일찍부터 있었다.
농부의 지혜는 저마다 쓰임새가 있는 농기구들을 제철에 맞게 적절히 골라 순서를 정해 사용할 때 빛난다. 여기서 중요하게 살펴야 하는 것은 흙과 농작물과 농부다.
논밭 흙의 특징에 따라, 그 흙에 뿌리내릴 농작물 상태에 따라, 그 흙을 어루만지며 일하는 농부의 힘과 기술에 따라 다양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농기구는 흙과 농작물과 농부를 잇는 징검다리와 같다. 흙과 농작물의 부족한 부분은 보충하고 넘치는 부분은 덜어내기 위해, 농부는 농기구를 적절히 써왔다.
다양한 농기계들은 더 빨리 더 많이 더 쉽게 농사를 짓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다. 오늘 내가 찾아 읽은 농기구 가운데도 이미 사용하지 않는 것들이 적지 않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오늘 쥐고 즐겁게 텃밭을 일군 호미도 사라질까. 갈퀴와 고무래와 낫도 잊히는 세상이 올까. 논흙을 전혀 밟지 않고도 벼농사를 짓는다는 이야기가 과장만은 아니다. 축산 앞에 ‘공장식’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던 시절을 지나 논밭과 식물공장을 비교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사라지는 것들의 안부를 묻는 것이 지난 시절을 추억해서만은 아니다. 상전벽해의 변화 속에서도 농기구가 농기계로 도구가 바뀌었을 뿐, 농사는 여전히 농사고 농부는 여전히 농부일까.
책을 덮고 겨울이 오기 전 텃밭에 심을 농작물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때 필요한 농기구들을 순서대로 놔본다. 이미 사라졌지만 만들어 써먹을 만한 농기구도 네댓개 고른다. 지키고 싶은 것과 바뀌더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 내 사랑의 경계(境界)리라.
김탁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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