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출범하는 농특위가
제 역할해 밥값을 하도록
일할수 있는 여건 필요해
대통령이 농촌 위기 인식
직접 챙기고 점검·독려해
자문기구 한계 극복해야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농특위)가 농어업인 삶의 질 향상과 농어촌지역개발위원회(삶의질위원회)와 통합을 전제로 새 출발을 할 모양이다. 그동안 운영 행태나 성과에 반신반의하던 농업계도 그나마 남은 농정의 소통창구로서 농특위 존치 결정을 환영하고 있다. 시골에서 농사나 짓는 사람이 무슨 심오한 계책이 있으랴만 더는 물러설 곳이 없는 절박한 농업·농촌 상황을 보면서 어쩌면 정책 효율성을 높이고 농정을 혁신하는 기회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외면하는 대통령자문기구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전임 위원장의 솔직한 고백을 듣고 농특위 임무가 무엇이었으며 그간 의결사항은 어떻게 처리됐는지 의아했다. 조언을 받겠다며 농특위를 만들어놓고 정작 위원장 재임 기간에 대통령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없었고 의결내용을 농식품부가 뒤집는 사례까지 있었다니, 이래서야 들러리 서는 일밖에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더구나 통합하겠다는 삶의질위원회는 범부처 차원에서 농어업인의 삶의 질 관련 정책을 총괄 조정하고 정부가 수립한 기본계획을 심의해 추진실적을 점검·평가·조정하는 중앙행정기관들의 협의기구다. 즉 제4차 삶의질기본계획(2020∼2024)은 보건복지·교육문화·경제활동·일자리 등 18개 중앙부서 소관의 183개 과제에다 총 51조원의 투·융자사업을 포함한다. 농어업인의 삶의 질 향상과 도시와 농어촌의 균형발전을 위해 종합적인 시책을 마련하자는 취지야 공감할 수 있지만 사업 종류는 물론 투자규모와 우선순위가 부서별로 제각기 달라서 국무총리조차 조율이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굳이 답을 찾자면 제도적으로 자문받고자 하는 업무 내용과 처리과정을 명시하고 대통령이 농업·농촌문제의 절박함을 인식해 직접 챙기는 것이다. 1994년 2월 농어촌발전위원회를 발족하고 농어업인 의견을 수렴해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타결 직후 좌절감에 빠진 농어촌에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는 농어촌발전대책과 농정개혁 과제를 도출했다. 순수 민간인으로 구성된 농어촌발전위원회가 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국립농수산대학 설립, 도농통합적 행정구역 개편, 농어민연금제도 실시 등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은 대통령이 추진 상황을 점검하고 독려했기 때문이다. 그 후 도하개발어젠다(DDA협상)를 계기로 2002∼2009년 농어업·농어촌특별대책위원회를 운영했으나 이렇다 할 대책은 내놓지 못한 채 농식품부장관 자문기관으로 전락했다.
저출산·고령화와 완전 개방, 갈수록 커지는 도농간 격차 등 절체절명의 지방소멸 위기 앞에서 상설 자문기구조차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 것은 문제상황의 절박함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혼자서도 잘할 수 있다고 자신하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정관의 치’로 중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군주로 평가되는 당 태종이 “어떻게 해야 정확하게 판단해서 나라를 잘 관리할 수 있는지” 묻자 신하 위징이 “군주가 현명해지는 것은 여러 의견을 두루 듣기 때문이며 아둔해지는 것은 한쪽으로 치우쳐 몇사람 말만 듣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1970년대초 박정희 대통령은 월간 경제동향보고회의에 새마을지도자를 초청해 성공사례를 듣고 고위공무원이 농민들과 숙식을 같이하며 함께 교육받도록 해 농어민의 어려움을 듣고 소통함으로써 새마을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그렇다. 힘센 황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벼서 가려운 곳을 긁을 수 있다지 않은가. 새로 출범하는 농특위가 제 역할을 해 밥값을 하도록 하려면 우선 일할 수 있는 여건부터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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