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필의 귀거래사] 꽃보다 아름다운 어른들과의 동행

입력 : 2022-11-16 00:00

‘삼강오륜’ 무너진지 오래

공직사회 윤리·기강 해이

결국엔 이태원 참사 초래

몇명 벌준다고 달라질까

각자의 본분·도리 다해야

가정·사회·국가 모두 평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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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7년째, 계절 변화는 어김이 없어 올해도 벌써 가을이 깊었다. 수확한 벼는 일부 수매하고 나머지는 보관했는데 어찌해야 할지 걱정이다. 쉬운 농사라는 말만 믿고 심은 작약과 관상수는 팔 곳이 없다. 언제쯤 책상 물린 신세를 면할지 집에선 돈에 흙을 묻혀 버리는 농사는 그만두라고 성화다. 그래도 세식구 먹을 양식이나마 자급하고 책 읽고 마음 편히 살고 있으니 시골생활에서 더 바랄 게 무엇인가.

오늘은 단촌에 와서 만난 두 어른, 점곡면 사촌리에 사는 동천 김 선생님과 안동의 이 학장님 이야기를 할 참이다. 선친과 비슷한 연배지만 우리 내외에게는 마음을 주고받는 친구 같은 어른이자 청빈검약과 외유내강·솔선수범을 실천하는 스승이다. 몇 해 전부터 한두달에 한번꼴로 식사하며 세상이야기도 나누는 사이인데 엊그제는 늦은 점심 후 인근 고운사로 바람을 쐬러 갔다. 단풍이 얼마나 곱던지 동천 선생이 ‘서리 맞은 단풍이 2월 꽃보다 아름답다’는 두목(杜牧)의 시 구절을 읊조리신다. 가을이 오면 자신은 떨어지지만 나무를 살리는 잎처럼 할 일을 마치고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삶의 본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은 <빚지고 저승에 가기 싫다고 한 시골노인>이란 책을 내고 지역신문에 칼럼도 연재하는 영남의 마지막 선비라 한다.

이 학장님은 교편생활을 접고 카톨릭문화회관을 운영하면서 안동 상지대학교와 이육사문학관을 설립하고 영남예술아카데미 운영과 안동무궁화 보전 등 지역문화 발전을 위해 분주하시다. 손님이 오면 손수 운전대를 잡고 해설을 하시는 것은 물론, 사진을 찍어 그날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쓰죽회(쓰고 죽자는 사람들)’ 멤버이시다. 몇 해 전 정홍원 총리께서 방문하셨을 때 서애 선생 영정참배 등 하회마을 유적을 자세히 안내하시고 저녁에는 남편 무덤에 머리카락 미투리와 편지를 남긴 원이 엄마의 사랑이야기로 고장 사람들의 삶과 품격·멋을 소개해 주셨다.

길지 않은 인생이지만 흐트러지지 않고 어른답게 산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가정·사회·국가를 지탱해 오던 삼강오륜(三綱五倫)이 개인의 행복 추구와 물질만능 풍조로 대체되면서 인정과 의리는 고사하고 공직사회의 윤리와 기강까지 무너지는 판국이라 집으로 오는 길에 동천 선생 댁의 유자정(儒子亭)과 벌단제(伐檀齊)를 둘러보았다. ‘벌단’이란 <시경(詩經)>에 소개된 박달나무를 베면서 부른 노래다. “꽝꽝 박달나무를 베어 황하에 넣었는데 맑은 황하에 잔물결이네. 씨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으면서 어찌 삼백전의 곡식을 거두었는가? 사냥도 하지 않으면서 마당에 짐승고기가 걸렸는가? 저 군자는 일하지 않고서도 밥을 먹는다네.” 월급만 축내는 관리를 꾸짖는 경구로 시골노인도 일하지 않고 먹는 것을 경계하는데 나라의 녹을 받는 공직자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책임과 도리 그리고 부끄러움을 잊어버린 것이 이태원 참사 관련 공직자뿐이겠는가? 국정감사를 하고 경찰 몇 명을 벌준다고 세상이 달라질 수 있을까? 아니다. 국가와 사회는 물론 개인까지 책임과 의무, 체면과 도덕이 바로 서지 않으면 끝없는 걱정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제나라의 임금이 공자에게 정치에 관해 묻자 “임금이 임금답고 신하가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아들은 아들다운 것입니다(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라고 답했다. 시스템이 중요하다지만 결국 사람의 일이고 마음가짐의 문제다.

일을 맡으면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하고 물러나서는 성찰하며 설 자리 앉을 자리를 구분하는, 그러면서도 빚지고 저승 가기 싫다는 꼬장꼬장한 어른들과의 동행이 꽃보다 아름다운 이유이다.

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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