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가공 통해 쌀 소비 촉진
친환경농법으로 고품질 쌀 생산
밀·콩·가루쌀 등 대체작물 재배
생산기반 정비·들녘경영체 육성
작목전환 대비 직불제 강화 필요
어제 벼를 수확했다. 작황은 괜찮은데 가격이 내려가 민간 미곡종합처리장(RPC)이 물벼를 사들이지 않는다니 우선 건조기에 말리고는 있으나 정부가 얼마나 매입해줄지 막막하다. 우리 집은 삼시 세끼 밥을 해 먹는데도 쌀을 많이 소비하지 않는다. 꽁보리밥으로 끼니를 때우던 시절 어쩌다 쌀이 조금 섞인 대궁을 차지하는 날이면 그렇게 행복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요즘 쌀 이야기를 들으면 흡사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우리 쌀산업을 지킬 수 있을까?
쌀의 굴욕은 식품소비 패턴 변화로 쌀 소비는 감소하는데 공급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1991년 116.3㎏에서 지난해 56.1㎏으로 절반 이상 줄었다. 같은 기간 생산은 538만t에서 338만t으로 줄었지만 관세화 유예에 따른 의무수입쌀을 더하면 29.5%만 준 셈이라 만성적 공급 과잉 상태이다.
정부는 쌀 45만t 격리 계획을 발표하고 야당은 양곡관리법을 개정해 초과 생산량은 의무적으로 격리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격리란 일시적인 사후조치라 효과가 불확실한 데다 구조적으로 수급불안을 심화할 수 있다는 염려도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의무격리제를 도입하면 24만t 규모의 초과 생산량이 2030년 64만1000t으로 늘어난다고 한다. 자칫 여론 눈치를 보다가 의무수입량을 늘린 쌀 관세화의 전철을 밟을까 우려된다.
우리나라는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쌀을 제외한 농산물을 관세화했다. 일본과 우리는 쌀산업 중요성을 고려해 10년간 관세화를 하지 않는 대신 일정량을 5%의 관세로 들여오기로 했다. 2005년 다시 10년간 쌀 관세화를 미루면서 의무수입량은 40만8700t으로 늘어났다. 2014년 또다시 관세화를 미뤄 우리쌀을 지켜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다. 하지만 더이상 의무수입량을 늘리면 쌀산업이 붕괴된다는 판단에, 2014년 513% 관세율을 적용해 추가적 의무수입을 막을 수 있었다. 비슷한 처지의 일본이 1999년 조기 관세화를 통해 의무수입을 최소화했는데 비해 우리는 쌀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41만t에 가까운 쌀을 5%의 관세로 들여왔지만 그간 사정을 반성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쌀산업을 보호하는 데도 요령과 계획이 필요하다. 쌀을 살리고자 먹지도 않을 쌀 생산을 부추기고 자원을 낭비한다면 어느 국민이 공감하겠는가? 바른 식생활교육과 함께 떡·빵·술 등 다양한 가공을 통해 쌀 소비를 촉진하는 한편 적정 생산을 유도하는 것이 쌀문제를 푸는 관건이다. 쌀은 우리 주식으로 식량안보 핵심이자 농가의 51.8%가 종사하는 주요 소득원이다. 벼농사는 계속하되 양보다는 고품질 쌀을 친환경농법으로 생산하거나 가공용 쌀과 사료·양조용 벼를 재배하는 법을 찾아보자. 논에 콩이나 밀 등 수입에 의존하거나 소비가 늘어나는 작물을 심는 것도 대안이다. 생산기반을 정비하고 들녘경영체를 육성해 공동으로 생산하면 작업 효율은 물론 품질관리와 유통에서 훨씬 유리할 수 있다. 새로운 작물 생산에 필요한 농기계와 선별·가공·유통 시설 보급, 작물 전환에 따른 투자와 위험을 상쇄하도록 직불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 쌀산업은 고율관세와 직불금 등으로 버티지만 취약한 생산기반과 벼 재배면적이 0.5㏊ 미만인 가구가 53.1%, 더구나 고령자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인기에 영합한 임기응변적 조치로는 우리 쌀산업을 유지하기 어렵다. 영세농에 대한 사회안전망 보강과 함께 시장에서 스스로 살아남는 고품질 쌀을 생산, 차별적으로 유통하는 산업정책으로 전환이 필요한 때다.
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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